『팩트풀니스』
(한스 로슬링이 올라 로슬링과 안나 로슬링 뢴룬드와 함께 지음, 이창신 옮김 2019, 김영사)
우리는 세상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책은 세상에 대한 13가지 물음으로 시작한다. 나도 풀었는데, 2개를 제외하고는 모두 맞추지 못했다. 그 대부분은 – 저자의 지적대로 – 내가 세상을 너무 부정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뒤이어 이에 대한 위안(?)을 줬는데, 대부분의 ‘선진국’ 사람들이 나와 같다는 것이었다. 저자인 한스 로슬링은 이 책에서 사람들이 왜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는가를 추적하는 동시에, 세계에 대한 오해를 풀어간다.
저자는 인간들이 세상을 잘못 이해하는 이유를 10가지 ‘본능instinct’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간극 본능, 부정 본능, 직선 본능, 공포 본능, 크기 본능, 일반화 본능, 운명 본능, 단일 관점 본능, 비난 본능, 다급한 본능이 그것이다(읽어 보면 알겠지만 여기서의 ‘본능’은 타고난 어떤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학습되는 것이다). 이것은 각 장의 제목이기도 하다. 여기에 ‘사실충실성 실현하기’가 포함되어 총11개장으로 목차가 구성된다.
간극 본능에서는 인간 세상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하 개도국)으로 나뉘었을 것이라는, 이렇게 세상에는 거대한 간극이 존재하는 잘못된 믿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러한 구분법은 30년~50년 전에는 유효했을지 모르지만, 현재는 전혀 유요하지 않다는 것을 저자는 여러 데이터를 통해 보여준다. 대신에 세계를 4단계 소득집단으로 구분하는데, 이것은 국가별 집단이 아니라 국가와 관련 없이 개인(혹은 가계)의 소득으로 구분한 것이다. 저자는 국가가 다르더라도 소득 수준이 같은 사람끼리는 비슷한 생활을 하는 것을 지적했다. 특히 평균의 함정, 극단의 비교에 대해 매우 경계한다.
부정 본능에서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선별적 보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좋은 소식은 뉴스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뉴스만 보면 세상은 온갖 나쁜 일로 가득하지만 사실 좋은 일이 더 많다. 다만 보도 되지 않을 뿐이다. 심지어 점진적인 개선 역시 뉴스가 되기 힘들다. 때문에 사람들은 보다 부정적인 보도만 접하게 된다. 거기에 점점 개선되는 상황이라도 현 시점에서 나쁠 수도 있다. 이런 모든 사례들이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직선 본능에서는 보여주는 그래프의 한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류는 18세기 이후 급격하게 성장해 왔지만, 앞으로도 그런 추세대로 성장할 가능성은 적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현재까지의 추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성장 및 하강 그래프는 직선뿐만 아니라 S자, 낙타 혹, 미끄럼틀, 2배 증가 곡선 등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그래프의 어느 부분을 보느냐에 따라서 S자 곡선이 직선으로 보이기도 한다. 저자는 세상을 보다 폭넓게 바라보기 위해서는 데이터를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공포 본능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보다 더 많은 공포를 느끼는 현상에 대한 분석이다. 저자가 대표적인 것으로 꼽은 것이 DDT이다. 초기 해충을 죽이기 위해 개발되어 획기적으로 유행했던 DDT는 이후 일부 확인되지 않은 부작용이 인간에게까지 미치고 있다고 믿게 되었고, 결국 DDT의 사용은 금지됐다. 하지만 2006년 세계보건기구의 발표에 따르면 DDT는 ‘미약하게 해로운’ 물질로 분리됐다. 테러도 마찬가지다. 테러로 죽는 사람은 극히 일부이지만, 그 공포는 실제보다 훨씬 과장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런 공포는 사람들에게 잘못된 판단을 유도한다.
크기 본능은 숫자가 왜곡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유니세프에 따르면 2016년 460만 명이 1살이 되기 전에 죽었다. 엄청난 숫자이다. 이것만 보면 세상은 너무 끔찍하다. 하지만 1950년도에는 1440만 명이 1살이 되기 전에 죽었다. 66년 동안 1000만 명이 덜 죽게 된 것이다. 440만 명이라는 숫자는 앞으로도 더 줄어야 하지만, 추세로 본다면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심지어 1950년도와 2016년의 인구를 비교해 보면 1세 이하 인구의 사망률은 극적으로 줄어든 것이다. 단순히 숫자의 크기만을 갖고 이야기하는 것은 오류를 초례 할 수 있다. 저자는 숫자를 비교하고, 나눠보기를 추천한다.
일반화의 본능은 인류가 가장 쉽게 범하는 오류 가운데 하나이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범주화하고 일반화 한다. 이것은 유용하기도 하지만, 세상을 왜곡하기도 한다. 가장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일반화는 아프리카에서 찾을 수 있다. 아프리카는 54개국 10억 명이 사는 거대한 대륙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프리카의 문제’를 단일한 것으로 본다. 동남아시아의 문제를 한국이나 일본의 문제, 혹은 카자흐스탄의 문제로 보는 것이 타당한가? 저자는 집단 안의 차이, 집단 사이의 유사점과 차이점 등을 면밀하게 살필 때만이 일반화의 오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운명 본능은 사람, 국가, 종교, 문화가 각각 특성이 있고, 그것이 운명을 결정한다는 믿음이다. 무슬림들은 출산율이 높을 것이라는 믿음, 아프리카는 서구 사회를 경제적으로 따라 잡을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 등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것이 잘못됐음을 수치를 통해 보여준다. 이슬람 국가에서도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고, 아프리카는 서구사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당장 할아버지와 손주들이 생각하는 상대의 ‘운명’은 다르다. 이런 특정한 문화와 종교 등에 대한 편견은 세상을 보는 시아를 한정할 것이라고 저자는 경고한다.
단일관점 본능은 전문가에 대한 경고처럼 보인다. 전문가는 어느 특정 분야를 통해 세상을 보고, 그 분야에 대해 존중받아야 하지만 다른 모든 분야를 그 관점에서 해석하려 할 때는 문제가 생긴다는 점을 경고한다. 시장 경제의 발전, 인권 문제, 민주주의의 적용 여부 가운데 어느 하나의 관점으로만 세상을 보는 것은 – 비단 저자의 경고가 아니더라도 – 매우 위험해 보인다.
비난 본능은 어떤 문제에 대해 비난의 대상을 찾고 싶어 하는 마음이다. 저자는 수업의 사례를 든다. 수업에서 저자가 거대 제약회사가 말라리아, 수면병과 같은 가나난 사람만 공격하는 질병에 대해 연구하지 않는다고 하자, 한 학생은 이들 제약회사를 비판한다. 하지만 비판의 대상을 끝까지 찾아가면 비판의 대상은 (그 학생의 조부모일지도 모르는) 스웨덴의 은퇴자들이다. 끝까지 정확하게 원인을 밝혀서 비판하자는 것이 이야기의 핵심이 아니다. 비판이던 칭찬이던 시스템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저자는 지적한다. 사실 누군가를 악당으로 만든다고 나쁜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다급한 본능은 어떤 문제를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한다는 믿음이다. 긴 시간동안 파생된 문제는 보통 짧은 기간 동안 해결할 수 없다. 그럼에도 내가 활동하는 시간, 혹은 내 당대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행위는 자칫 세계관을 왜곡할 수 있다. 어떤 문제가 급박하다고 여겨질 때에는 잠시 심호흡을 하고 정확한 데이터를 찾아서 살펴보고 함부로 미래를 예측하는 사람을 피하라고 저자는 충고한다.
마지막 장은 사실충실성 실천하기이다. 저자는 정확한 사실을 충실하게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큰 힘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 여러 가지를 제안하는데, 특히 강조한 것은 겸손과 호기심이다. 겸손은 “본능으로 사실을 올바르게 파악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 것이고, 지식의 한계를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다. 호기심이란 “새로운 정보를 마다하지 않고 적극 받아들이는 자세”를 말한다. 세상은 넓으니 당연히 내가 모르는 지식이 있고, 또 알던 지식도 바뀔 수 있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저자가 말하는 ‘사실충실성 실천’이다.
의도한 바이겠지만 저자는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보다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겸손과 호기심의 부족이라고 이야기한 샘이다. 왜곡되거나 잘못된 데이터 표본, 과장된 공포, 상대에 대한 편견, 내가 가진 지식의 한계(나는 인지하지 못하지만), 조급함 등은 가장 뛰어난 지식인들조차 세상을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힘은 정확하게 세상을 바라볼 때 생긴다.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는 바로 여기 있을 것이다.
고백하자면 이 책을 읽으면서 반성을 많이 했다. 내가 바라보는 세계는 데이터에 기반한 것도, 대단한 철학을 기반으로 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편견과 조급함, 편협한 지식에 사로잡혀 세상을 해석하려 했던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점에서 이 책에 감사한 부분도 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고 했지, 지금 세상이 만족할만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책을 완전히 마무리 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그 책은 그의 아들 부부에 의해 마무리 되었다. 이제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노력도 남은 우리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