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여행을 좋아하긴 하지만, 많이 다녔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 같다. 언젠가부터 직장 생활과 여러 핑계로 여행을 잘 가지 않게 되었다. 사실 이정도면 ‘여행을 좋아한다’고 말하기는 것부터 잘못된 것인지 모른다. 
여행이 낯선 곳으로의 떠남이라면, 내 첫 여행은 중3때 친구와 종로에 있던 피카드리 극장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여행보다 모험에 가까웠지만, 그래도 낯선 곳으로의 떠남이 주는 설렘, 찾아가기 위한 계획 등을 짠 것 등을 고려해보면 첫 여행이라고 해도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내 첫 여행은 친구와 함께였다.
나의 본격적인 여행은 대학교 때 ‘답사’부터였다. 사학과를 진학한 나는, 봄과 가을 두 번의 정기 답사를 갔고, 당시 따로 가입한 학회(과내 공부 동아리)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답사를 갔으니 답사만 따라다녀도 일년에 6번의 여행을 하게 되는 셈이었다.  


대학교 1학년 때는 답사 외에도 또 한 번의 여행이 있었는데, 내 첫 여행을 한 친구와의 이상한 여행이었다. 답사 두 번 갔다고 자신감이 생긴 나는 친구와 무작정 부석사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을 보기위해 여행을 떠났다. 시외버스를 타고 떠난 그 여행은 영주, 안동, 부산, 거제를 거쳐 다시 부산으로 와서 서울로 돌아오는 여정이었다. 계산된 것은 없었고, 그냥 생각나는대로 갔던 여행이다. 지금은 사진 한 장 없는 여행이지만, 이것이 내가 떠난 첫 번째 ‘장기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군대를 다녀온 다음에도 여행은 참 많이도 갔다. 새벽에 경주 월지에 혼자 들어간 적도 있고, 병산서원 앞 낙동강에 발을 담그고 논 기억도 있다. 답사를 가서 히치하이킹을 해서 강원도 정선부터 월정사까지 간 기억도 있다. 대학원에 진학해서도 이런 답사를 가장한 모험과 여행은 계속되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28일간 혼자 일본에 갔던 것이다. 돈이 없어 걷고 또 걸으며 다녔던 수는, 오전에는 대학 도서관, 오후에는 여행, 저녁에는 일을 하는 일정으로 꾸려졌는데, 내 첫 혼자 떠난 해외 여행이기 때문이다. 박물관에 있을 때는 중국을 몇 번 갔고, 박사과정 때는 대학원 총학의 주최로 그리스-터키를 갔다.


직장을 다니며 경제적 여유가 조금 생기면서 해외를 본격적으로 나갔다. 이탈리아, 스페인, 우즈베키스탄, 필리핀 등이 직장을 다니며 가게 된 여행지이다. 모두 기억에 남고, 즐거웠다. 


이 모든 여행에는 공통점이 있다. 가고 싶어서 갔고, 그래서 갖게 된 설렘이다. 계획을 짜는 그 순간부터 흥분되고, 짐을 싸는 그 순간은 너무 신이 났다. 여행 전날 밤에는 여행에서 만날 새로운 풍경과 인연에 잠이 오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점차 가고 싶은 곳도 점차 사라지고, 그러니 설렘도 사라졌다. 여행의 빈도도 줄어들었다. 


친구에게 여행 제안을 받은 것은 바로 이런 순간이었다. 친구는 어디를 가서 좀 걷자고 했고, 난 선뜻 좋다고 했다. 대학교 때 만난 친구는 누구보다 나와 함께 여행을 많이 다닌 사람이었고, 서로의 취향을 대략 알고 있었다. 그리고 20년이 넘는 세월은 조금 다른 취향 정도는 서로 맞출 수 있는 인간관계의 숙성을 가오기도 했다. 난 물론 흔쾌히 좋다고 했다. 


준비는 상대적으로 쉬웠다. 아니 준비라고 할 것도 없었다. 숙소를 예약하는 것으로 준비를 끝냈다. 간만에 친구와의 여행에 기분 좋은 설렘을 느껴보려고 했는데, 할 것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짐도 단촐해서 금방 꾸렸다. 의외로 떠나기 전 가장 큰 위기는 다른 것이 아니라 서로의 몸 상태였다. 친구는 전날 아프다고 연락이 왔고, 난 조금 철렁했다. 나라도 먼저 가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다행이 극적으로 친구의 몸상태는 회복됐고(어쩌면 억지로 회복 되었다고 믿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예정보다 시간만 조금 늦춰진 여행을 떠났다. 

 


2. 첫 날
친구의 집으로 차를 몰았다. 기분 좋은 출발이었다. 날씨도 기분도 좋았다. 친구 집으로 가는 도중 네비게이션을 제대로 보지 못해 조금 돌아가긴 했지만, 생각보다 수월하게(?) 친구의 집에 도착했다. 문제는 그 와중에 마시려고 사 놓은 술을 놓고 갔다는 것인데, 친구 전화를 받고 너무 신나게 출발하면서 그만 그것만 빼놓은 것이다. 다행히 친구는 다음에 먹으면 된다고 신경쓰지 말라고 했다. 하긴, 둘의 여행이 오랜만인 것이지, 만남이 어려운 것은 아니니까. 나도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강릉까지는 길도 많이 막히지 않았지만, 대화를 하다보니 정말 금방 도착한 기분이었다(이건 물론 운전을 한 친구 입장도 들어봐야 한다). 이른 새벽에 출발하기로 한 것이 여러 사정으로 조금 늦춰져, 길이 막히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평일 낮의 도로는 생각보다 한산했고, 조금 늦은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시간에 강릉에 도착했다. 


조금 늦은 점심을 먹고, 숙소에 짐을 풀고 바로 밖으로 나왔다. 걷기로 했으니 걷기 위해 나왔다. 우리는 경포호를 한 바퀴 돌았다. 경포호는 너무 넓어 한 바퀴 도는데 몇 시간은 걸린 것 같았는데, 한 시간이면 돌 수 있었다. 곳곳에 산불 피해의 흔적이 보였다. 우리는 경포호를 한바퀴 돌고, 안목해변까지 내리 걸었다. 강문의 긴 솔밭을 지나 안목 해변까지는 한 시간 남짓 걸렸다. 다음날부터 본격적으로 걸어야 하기에 몸을 적응시킨다고 생각하고 걸었는데, 처음엔 생각보다 수월하다고 생각했던 걷기는 두 시간이 다 되어가자 힘에 부쳤다. 무엇보다 오른쪽 새끼 발가락에 물집이 잡히기 시작했다. 

경포호를 걷는 도중(좌), 해질 무렵의 해변(우)

 


하지만 걷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적당한 온도, 맑은 하늘, 푸른 바다, 솔밭,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 이야기 나눌 친구. ‘걷기에 가장 좋은 환경은 이런 것이 아닐까?’란 생각마저 들었다. 난 혼자 여행을 꽤나 즐기는 편이지만, 혼자 하는 여행은 어느 순간 한계에 부딪힌다. 외로움이다. 좋은 것을 봐도 함께 나눌 사람이 없을 때, 하루 종일 돌아다니고 숙소에 혼자 멍하니 있을 때, 긴 이동 시간을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할 때 등 외로움은 여행에서 문득, 잊을 만하면 찾아온다. 혼자 여행이 주는 장점도 역시 헤아리라고 하면, 몇 개 당장 헤아릴 수 있을 만큼 말할 수 있지만, 외로움은 저 장점들을 가끔 잊게 할 만큼 강하게 찾아온다. 이번 여행에는 그 외로움이 없었다. 가는 길에, 커피를 마시며 우리는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안목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숙소로 돌아와 씻고, 택시를 타고 친구가 찾아 놓은 맛집을 찾아갔다. 우리를 태워준 택시기사의 조카가 운영하는 집이라고 했다. 꼬막 비빔밥과 참치 마구로는 꽤 맛있었다. 아직 다 회복하지 못한 친구의 건강과, 내일 일정에 대한 나의 두려움 때문에 첫날 일정은 여기서 마치기로 했다. 숙소로 돌아와 나만 맥주 두 캔을 더 마시고 잠이 들었다. 

 


3. 둘째 날
우리가 걷기로 한 길은 해파랑길이다. 부산부터 고성까지 동해안을 잇는 이 길은 총 50개의 코스로 이루어졌다. 이날 우리가 걷기로 한 길은 강원도 동해시 묵호에서 옥계역까지 이어지는 34코스였다. 동해에서 묵호까지 걷는 것이 정방향이었는데, 옥계역에서 동해로 가는 버스도 놓치게 되어 결국 역방향(옥계에서 묵호항까지)으로 걷기로 했다. 거리상은 12km 약 3시간이면 갈 수 있었다. 


아침을 먹고 안목해변에 가서 커피를 마셨다. 이른 시간에 문을 연 집이 별로 없어 들어간 커피숍은 호텔을 겸하는 것 같았는데, 윗층(정확히는 6층)의 전망이 매우 훌륭했다. 젠주라는 이름의 커피집이었다. 커피까지 충전하고야 우리는 본격적인 여정을 시작했다.  

커피를 마시며 본 풍경


여정은 시작부터 험난했다. 날은 맑았는데,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우리가 걸어가는 쪽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맞바람이었다. 파도는 무섭게 일렁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해파랑길 동해시 부분의 안내가 그리 친절하지 않았다. 우리는 덕분에 여정의 시작부터 길을 헤맸다. 길을 잘못 들어 한참을 가다 길이 없음을 확인하고서야 다시 제대로 된 길을 찾았다. 살짝 짜증이 날 뻔도 했지만, 친구와 서로 안내판을 제대로 만들지 못한 사람들을 욕하며 짜증을 날려보냈다. 

처음 본 해파랑길 이정표(좌), 이후부터는 오른쪽과 같은 이정표를 찾을 수 있었다. 


역시 걷다 보니 좋았다. 맞바람도 강하고 어제부터 잡히기 시작한 물집이 계속 거슬렸지만, ‘좋음’을 방해하지는 못했다. 뭐가 좋았는지 지금 생각하면 무언가 특정해 말하기는 어렵다. 그냥 그날 그 시간에 그곳을 친구와 함께 걷는 것이 좋았다고 하면 될 것이다. 걸으며 나누는 걷기에 대한 효능에 대한 이야기도, 마주치는 사람들에 대한 추정도, 풍경에 대한 감상도, 지금 생각하면 시답지 않은 이야기였지만 마냥 즐거웠다. 우연히 찾아간 길에서 발견한 좋은 풍경도, 걸으며 찍은 별거 아닌 영상도 그냥 좋았다. 

그날 걷다가 본 풍경들. 파란 하늘과 거친 파도를 모두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좋은 것과 힘든 것은 다른 문제였다. 내 물집은 점점 커져갔고 거센 바람은 도저히 멈출 것 같지 않았다. 우리는 걷는 도중 본 온천에 가기로 했고, 묵호항에 도착하자 곧 택시를 잡고 온천으로 갔다. 힘들게 걸은 길이었는데 차로는 금방인 것이 조금 허탈하기도 했지만, 그것마저 서로 웃으며 이야기 할 좋은 이야기 거리일 뿐이었다. 온천을 하며 떨어진 기력을 회복하기 위해 ‘고기’를 먹기로 했다. 역시 친구가 알아 놓은 곳이었다. 


숙소에 가서 휴식을 취하고 옷을 갈아입고 고기를 먹으러갔다. 식당이라고 보기에는 조금 ‘특별한’ 위치에 있는 식당의 고기는 맛있었고, 무엇보다 식후에 나오는 된장찌개는 일품이었다. 다 먹고 난 후에는 역시 친구가 알아둔 한 맥주 부루어리에 가서 맥주를 마셨다. 꽤 신선한 맥주를 마실 수 있어 좋았다. 역시 숙소에서 가볍게 맥주를 마시고 잤다. 

음식사진은 올리지 않으려 했지만, 이 고기와 된장찌개는 너무 맛있어서 올림.



4. 셋째 날
셋째 날, 친구가 무릎 상태가 좋지 않다고 했다. 어제 마신 맥주 탓일 수도 있고, 생각보다 젊지 않은 우리 몸 때문일 수도 있었다. 겨우 40대 초중반에 무슨 나이 탓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확실한 것은 20대와 같이 뛸 수도 없고 빠르지도 않다는 것이다. 20대에 당연하던 것들이 이제는 노력을 해야만 가능한 나이가 됐다. 다행히 내 물집은 마법처럼 아프지 않았다. 전날 물집에서 물을 좀 뺐는데, 그것에 효과를 본 모양이었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온 것이 아니었으니 무리를 할 필요는 없었다. 상황에 맞춰 가보자고 했다. 


역시 아침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일정을 시작했다. 이번에도 안목의 커피집에서 커피를 마셨는데, 그 커피집은 전명의 거대한 유리가 위 아래로 열렸다. 친구도 몇 번 와본 곳이라고 했는데, 문이 열리는 것은 처음 본다고 했다. AM이라는 커피집이었다. 둘이 동시에 휴대폰을 꺼내어 영상을 찍었는데, 남들이 봤으면 조금 웃꼈겠다는 생각이 글을 쓰는 지금에서야 조금 든다. 우리는 신기한 경험을 뒤로 하고 여정을 시작했다. 


여정은 경포호부터 주문진항까지였다. 해파랑길 39코스 일부와 40코스를 걸었다. 이곳에서야 강릉산불의 피해가 심각하게 다가왔다. 사근진과 순긋해변 근처의 마을들은 산불로 초토화가 되어 있었다. 살아남은 집은 정말 운이 좋아서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바로 옆집인데 한 집은 모두 불에 타고, 한 집은 약간의 피해로 끝나기도 했다. 바람도 어제와 같이 강하지 않고, 하늘은 어제만큼 맑아 걷기는 오늘이 더 좋았지만, 마음 한 구석이 무거웠다. 걷는 이야기 가운데 상당부분이 산불에 관한 것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그 모습은 처참했다. 바다가 아름다워 더 슬픈 풍경이었다. 

길을 걷다 본 강릉 산불의 피해의 현장


사천으로 다가가자 풍경이 바뀌었다. 높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있었고, 새롭게 짓는 팬션도 눈에 많이 들어왔다. 무언가 사천항 주변으로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는데, 그것이 무엇 때문인지 까지는 찾지 못했다. 유명하다는 박이추커피공장에서 잠시 커피를 마시며 쉬었다 다시 걸었다. 강릉 부근의 해파랑길은 강릉에서 조성한 바우길을 잘 활용한 것 같았다. 안내도 친절하게 되어 있었고, 다시 돌아가기 위한 대중교통도 잘 마련되어 있었다. 우리는 중간중간 사람이 없는 해변에서 드론을 날리며 쉬엄쉬엄 갔다. 다행이 친구의 무릎도 괜찮은 것 같았다. 


주문진항 부근은 온통 공사 중이었다. 여름을 대비하는 것 같았다. 덕분에 걸을 수 있는 길이 없었고, 위험하기도 했다. 보아둔 식당까지는 택시를 불러서 갔다. 메밀막국수와 수육을 잘한다는 집에가서 점심을 먹었다. 막국수도, 수육도 맛있었다. 식사 후에는 경포로 돌아가는 버스를 바로 탈 수 있었다. 시티(Sea Tea)버스라고 명명된 이 버스는 강릉의 명물인 바다와 차(아마도 커피)에서 이름을 가져온 듯 보였다. 쉬엄쉬엄 왔지만 네 시간 가까이 걸어서 온 길을 버스는 20분만에 도착했다. 


우리는 숙소로 돌아와 씻고 선물가게로 갔다. 친구 딸의 선물을 사기 위해서 였는데, 나도 마리를 돌봐주는 사람들을 위한 선물을 샀다. 술을 먹으러 간 곳은 교동이었는데, 서울의 웬만한 번화가 보다 훨씬 크고 화려했다. 친구는 “네가 사는 성북동 보다는 여기에 훨씬 프렌차이즈 술집이 많을 것‘이라고 했는데, 그 정도가 아니라 내가 서울에 살면서도 보지 못한 프렌차이즈 식당과 술집이 많았다. 이곳에서 회와 맥주와 사케, 그리고 위스키를 마셨다. 밤바다를 보고 숙소로 돌아와서는 1층 바에서 생맥주를 한 잔씩 마셨다. 

밤바다에서 찍은 친구와 나

 


5. 마지말날과 에필로그
돌아가는 날이다. 비가 아주 약간씩 떨어졌다. 우리는 짬뽕순두부로 유명한 동화가든이라는 곳을 갔는데, 8시 40분쯤 도착했지만 사람이 많아 식사는 한 시간 후에나 할 수 있었다. 밥을 먹고 강릉중앙시장을 갔다. 강릉을 여러 번 와본 친구는 시장의 이곳저곳을 안내했다. 생각해보니 강릉에 오며 좋았던 곳은 다 친구의 안내 덕분이었다. 나야 혼자 와서 몇 곳 둘러보고 간 것이 전부였기에 잘 아는 곳이 없었다. 이것저것 먹을 것을 좀 사고, 친구 딸에게 줄 기념품도 하나 샀다. 그리고 강릉을 떠났다. 

강릉시장. 토요일이 되니 오전임에도 사람이 북적거렸다.


대관령을 넘으니 비가 꽤 오기 시작했다. 태백산맥의 위용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운전은  계속 친구가 했다. 친구 집에는 2시 30분 전후에 도착한 것으로 기억한다. 거기서 친구와 햄버거로 점심을 먹었다. 다시 내 차를 타고 집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5시. 짐을 풀고 씻고, 마리와 침대에 누웠는데, 많이 삐친 모양새다. 먹을 것으로 달래 봤는데, 쉬이 풀리지 않는다. 그래도 억지로 않고 침대에 다시 누우니 도망가진 않는다. 외로웠던 모양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여행은 늘 집으로 돌아오는 여정이다. 일상의 강고함이 있기에 가능한 모험이기도 하다. 일상은 지루한 듯 반복되지만, 내 삶을 지켜주는 버팀목이기도 하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는 것은 언제나 약간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날씨, 교통, 언어 등 다양한 변수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모험에서 만들어진 추억들은 내 일상을 행복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추억을 함께 한 사람이 있다면, 나중에 그 추억을 함께 나누는 것만으로도 다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친구와의 여행이 좋았던 것도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여행 내내 새로운 추억을 만들기도 했지만 지난 추억을 곱씹으며 다녔다. 그리고 다시만든 이 추억으로 또 행복한 일상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여행을 다녀와 감기를 심하게 앓았다. 일주일이 지나서야 기억을 더듬으며 여행기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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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차 : 강릉-서울

 

1.

아침 느지막하게 일어났다. 잠을 꽤 푹잤다. 어제 사놓은 재료들로 아침을 먹었다.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시 내린다던 비는 예보대로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여행의 마지막 날 같은 느낌은 들지 않았다. 하루 더 남은 휴가 때문이었을까? 알 수 없는 기분이었다. 짐 정리를 하고 제법 깔끔하게 방을 정리하고 숙소를 떠났다. 이틀만큼 정이 든 숙소였다.

2.

테라로사커피공장 본점으로 갔다. 오전 11시 무렵이었는데, 차가 제법 있었다. 엄청난 규모에 놀랐다. 이 정도는 되어야 한 지역의 랜드마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대기 번호가 있었지만 앞으로는 고작 두 명 뿐이었고, 우리는 원하는 자리에 앉아 커피와 빵을 먹을 수 있었다. 꽤나 여유로웠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오늘은 좀 여유롭네.”라고 말했다. CK에게 핀잔을 들었다. ‘나 때문에 일정이 빡빡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사실 혼자 다닐 때는 아침 7시나 8시에 나오는 일이 다반사인 나에게는 이번 일정도 꽤나 여유롭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CK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번 여행은 오롯이 그들 덕에 즐거울 수 있었다.

 

3.

커피를 마시고 나와 서울로 향했다. 여행에 대한 미련을 더 갖지 말라는 듯, 비는 더 세차게 쏟아졌다. 나는 심심한 듯 계속 둘 모두에게 말을 걸었는데, 그 빗속에서 둘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한동안 많은 대화를 하지 않았는데, 다들 내가 배고프다!”고 하는 말에 웃었다. 아까 커피를 마시며 빵을 먹을 때 이렇게 먹으면 점심을 먹지 않아도 되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양평에 들러 순댓국을 먹었다.

4.

정말 집으로 갔다. C를 내려주고, K를 내려줬다. 둘이 내리니 차 안이 허전했다. 혼자도 자주 운전하던 차였는데, 그들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 줄지는 몰랐다. 여행에서 그들의 비중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여행의 최종 목적지인 집으로 왔다. 마리가 날 반긴다. 그들의 빈자리가 아쉽기도 했지만, 일상이 있기에 그런 일탈도 가능했을 것이다. 이렇게 글을 쓰며 다시 여행을 돌아본다. 이렇게 삶의 추억이 하나 더 쌓였다. 이렇게 쌓인 추억으로 앞으로 살 힘을 얻는다. 이제 다시 CK를 만나면 2020년 여름, 이날의 추억을 떠올리며 이야기꽃을 피울 것이다. 그것이 여행을 하는 목적 가운데 하나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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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차 : 강릉-속초

 

1.

어제 장을 봐온 음식으로 간단히 아침을 먹고 강문 해변으로 갔다. 어제보다 파도는 더 강해져 있었다. 아침부터 사람들은 부지런하게 해변으로 왔다. 나만 바다를 그리워하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묘한 동질감은 안도감으로 변했다. 우리는 K의 지휘아래 연신 사진을 찍었다. 이런, 저런 포즈를 남들이 보든 말든 취해가며 찍는 모습에서 약간은 어린 시절의 모습이 지나갔다. 20대에 만난 우리 일행은, 같이 여행을 옴으로서 20대의 어느 자락으로 돌아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강문과 안목 해변을 지나 우리는 속초로 향했다. 가는 길에 본 하늘에는 무지개 같은 해무리가 태양을 감싸고 있었다. 곧 비가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과 즐거운 여행에 대한 기대가 동시에 들었다.

강문해변의 높은 파도

2.

처음 간 곳은 속초의 동아서점. 1956년에 처음 문을 열었다는 서점은 이미 명물이 되어 있었다. 내가 서점을 간 것은 대한민국 도슨트 시리즈 1권 속초 편을 쓴 그곳의 사장님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약속은 하지 않았다. 약속을 함으로서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만나지 못하면 그것이 인연의 한계라 느꼈다. 서점은 세련됐고, 아늑했다. 서점 여러 곳에서 서점의 역사를 되새기게 하는 문구들을 볼 수 있었다. 운이 좋게 사장님을 만났다. 명함을 받고 정확한 직함이 매니저인 것을 알았다. 생각보다 많이 젊어 놀랐다. 50대가 넘는 중후한 서점 주인을 생각했다. 내 상상력의 한계를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잠깐의 대화였지만, 내가 책을 쓰는 것에도 여러 가지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그의 책에 사인을 받고 서점을 조금 더 둘러보고, 기념품을 보고 나왔다. 여행지에서 서점을 간다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서점이 한 지역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날이 온다면 얼마나 멋질까라는 생각을 했다. 한 지역을 소개하는 책들이 한 쪽을 차지하는 서점을 상상하면, 그것이 상상이라도 신이 났다.

속초 동아서점
내부의 책은 서점만의 분류 법으로 나누어 놨다고 했다.

 

 

3.

속초박물관으로 갔다. 발해역사관-실향민가옥-전시실로 이루어진 이곳은 속초라는 곳의 역사성을 보여주기 위한 노력이 보이는 곳이었다. 특히 실향민가옥을 재현해 놓은 것은 이 지역 현대사의 아픔을 고스라니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이야 사진 찍기 좋은 독특한 곳일 뿐일 수 있지만, 허름한 그 가옥에서의 고단한 삶이 약간은 느껴졌다. 고향이 가까워 오기도 했지만 군과 관련된 일을 하기 위해 이곳에 정착한 사람들 가운데 고향이 같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 유래가 됐다고 한다. 실향의 아픔, 먹고 살아야 하는 고단함을 한 눈에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단 구구한 설명에도 발해 역사관은 내용도, 있어야 할 이유도 모두 나를 설득하기에는 좀 부족했다. 날씨가 좋았다면 울산바위가 보였을 전망대는 매우 좋았다.

재현해 놓은 실향민 마을
재현해 놓은 옛날 속초역과 나..

4.

서피비치라고 불리는 양양 하조대로 갔다. 여느 해변에는 사람이 없었는데 이곳만은 달랐다. 서핑을 하는 사람은 물론, 20대의 젊은 사람들을 주축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있었다. 파도가 강해 서핑 말고는 할 것이 없었음에도 사람이 많았다. 이국적으로 꾸며놓은 해변 때문일까. 날이 추운대도 이곳에선 그동안 열심히 만들었을 좋은 몸을 뽐내기 위한 사람들이 많았다. 나중에 찾아보니 이곳에서는 일종의 파티도 열린다고 한다. 젊음과 파티, 잘 꾸며 놓은 장소.. 사람들이 모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어느 덧 번잡함이 싫어질 나이가 된 우리 일행은 인증샷을 몇 장 찍는 것으로 만족하고 그곳을 도망치듯 벗어났다.

너도 나도 인증샷
유난히 많던 사람들

5.

돌아오는 길에 박이추 커피를 갔다. 1세대 바리스타라고 하는 박이추 선생이 만든 커피가게라고 했다. 꽤 큰 규모라고 생각했지만, 사람이 많아 잠시 대기를 해야 했다. 커피와 케익이 모두 맛있었다. 그곳에서 조금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강릉에 돌아가 고래서점을 갔다. 사람들이 와서 편히 책을 읽을 수 있는 그런 서점이었다. 빵집을 겸하고 있었지만, 굳이 빵을 사지 않아도 책을 볼 수 있었고, 볼 수 있는 공간도 잘 마련되어 있었다. 이런 속초와 강릉, 모두 이런 서점들이 있으므로 나에겐 더욱 매력적인 도시로 자리매김했다.

6.

같이 장을 봐서 돌아와 술을 마셨다. 셋 모두 즐겨본다는 예능 프로그램을 다시 보기로 시청했다. 모두 좋아하기도 했지만, 같이 보니 더욱 즐거웠다. 나에겐 혼자 하는 즐거움도, 같이 하는 즐거움도 모두 필요했던 것 같다. 그리고 또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나와 CK는 꽤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즐겁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추억의 힘이라 생각했다. 추억은 미화되기 마련이라지만, 그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의 유대감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 생각을 하며, 얼굴에 팩을 하고 잠이 들었다(물론 중간에 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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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에 가서

A Day in The Life 2019. 6. 20. 21:15

강릉에 가서.

강호에 병이 깊지도 않고
누가 관동 팔백리를 맞기지도 않았는데
왜 동해바다가 보고 싶었을까?

동해하면 떠오르는 곳이 강릉
강릉으로 향했다
시간 생각, 돈 생각 등 잡생각은 많은데
동해바다는 쉬이 나타나질 않는다

초당에서 밥을 먹었다. 아침이었다
예전에 갔던 곳은 찾을 수 없었다
모두 세련되고 비싸졌다

주유를 하고 누군가 추천한 헌화로에 갔다
생각보다 별거 없었지만 마참내 동해바다가 나왔고
바위해변은 동해만의 것인 듯 좋았다
(실은 서해와 남해에도 있다)

정동진으로 갔다
바닷가엔 사람이 거의 없다
혼자 바다에 발을 담궜다
햇살은 뜨거웠지만 바람이 시원했다.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는 한동안 쉬었다

‘이것 때문에 왔나보다’ 이렇게 생각했다
먼 길을 온 자위였는지도 모른다
목적 없이 왔으니 해야할 것도 없다

커피거리를 왔다
횟집대신 커피집이 있을 뿐이었다
테라스에 앉았는데 바람에 책갈피가 날아갔고
새로 산 정세랑의 소설집엔 커피를 쏟았다
‘이책은 누군가에게 줄 수 없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산미가 강하다해서 시킨 커피는
몇모금 마시지 않은 입에도 신맛을 남겼다

벌써 돌아갈 걱정이다
책갈피를 날려보내고 커피를 쏟은 카페지만
그늘에 불어오는 바람만으로
많은 것을 잊을 수 있었다

혼자 생각할 시간이,
그리고 뭐라도 쓸 시간이 필요했던 것을 그제야 알았다

다시 동해바다로 갔다.
들어가기엔 다소 이르지만
바라보기엔 더없이 좋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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