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선 결과에 대해 무덤덤하게 생각하려 했지만, 사실 마음속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어제(2012년 12월 21일) 영화 레미제라블을 보고 집에 오는 길에, 페이스북에서 한진중공업의 노동자 한 분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다시' 확인했다. 그리고 때 마침 꽃다지의 '당부'라는 노래가 나왔는데, 버스 안에서 엉엉 울 뻔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눈에 그렁그렁 맻혔는데, 그 눈물 때문이 아니라, 내가 이렇고 있다는 사실에 당황했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으니.
이제와 말하는 것이지만, 난 문재인이 이길 가능성은 적다고 생각했다. 다만 이겼으면 하는 바람은 간절했다. 그래서 유리한 기사만보고, 유리한 판단만 의식적으로 했던 것 같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냉정했고, 난 내가 그렇게 피하려 했던 보기 싫은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을 때는 내 예상과 다르게 이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더 힘들었다. 독재자의 딸이 인권변호사-그것도 그 독재자에게 감옥에 수감된-를 이기고 대통령이 된 현실을 어찌 인정하란 말인가!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정치와 도덕을 분리한 것을 근대 정치의 시작으로 본다고도 하는데, 난 그리 근대적이거나 현대적인 인간이 되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노력을 했다. 민주주의란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이 있을 때, 그들과 다른 생각들을 조율해보고, 경쟁하고 결과를 존중하고 승복하는 것. 그리고 거기에 굴하지 않고 다시 나의 의견을 남들에게 설득하여, 다음에는 내 의견이 선택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렇게 자신을 설득했다.
그 다음날 아침이 되었을 때 일어나면서 문득 대통령 취임선서를 하는 그녀를 생각하자니 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대통령이 ‘정상적인 가정’을 꾸릴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독신인 여성 대통령은 어쩌면 그 자체로 큰 의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가 청와대도 ‘돌아가며’ 무슨 생각을 할지에 생각이 미치니, 정말 미칠 것 같았다. 책도 잘 읽히지가 않았다.
같은 날 오전, 선거 이후 들어가지 않던 즐겨가는 게시판을 들어갔더니, 「월간 박정희」라는 잡지가 나왔다고 하고, 인혁당 사건을 좌파들의 조작질 쯤으로 치부하는 기사도 있는 것을 확인했다. 다시한번 끔찍했다. 아직 그들의 가족들이 살아있고, 그 상처가 아물지도 않았는데, 대통령 당선자의 아버지의 일이라고 그 끔찍한 범죄행위를 합리화 하려는 시도가 벌써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더 기분이 묘해져서, 영화를 보러갔다. 본 영화는 ‘레미제라블’ 19세기의 혁명과 그 안에 얽힌 복잡한 인간의 운명에 대한 대서사시. 어차피 내용이야 다 알고 있었고, 편하게 시간이나 때우려고 간 것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귀를 사로잡은 노래는 “Do you hear the people sing?”, 혁명의 노래였다. 어쩌란 말인가!
집에 도착했다. 그리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이런 저런 노래만 계속 들었다.
생각해봤다, 나에게 문재인은 차악이었다. 정말 최악-어떤 사람은 그녀에게 절망을 보아서-을 피하고 싶었던 마음에, 김소연 후보가 선거운동 중에 맞고, 김순자 후보가 그 힘든 선거 운동을 하는 데도, 2002년 이후 처음으로 민주당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어떤 이는 이것을 ‘치욕의 한 표’라고 했고 거기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뭘 어쩌자고 한 생각은 아니었고 ‘그냥 그랬었지..’ 정도였다.
또 생각해봤다. 난 이제 뭘 해야 하나. 얼핏 답은 간단했다. 그냥 하던 것 잘 하면 된다. 지금처럼 공부하고, 일하면 된다. 그런데 그게 전부인가라고 하니 좀 답답해졌다. 뭐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은 여기에서 멈췄다. 정말 잘 모르겠다. 혼란스럽다. 내가 생각하는 세상이 항상 옳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내 신념과 이상과 세상이 완전히 다른 길로 가는 데도, 나는 그냥 내 할 일만 하면 되는 것인가? 모르겠다.
내키지는 않지만, 그리고 내가 이렇게 말한다고 이것이 전해지지도 않겠지만, 그래도 1500만명 이상의 지지로 당선된 박근혜 당선자에게 축하를 전한다. 그리고 그 결과도 존중한다. 나아가 - 큰 기대는 하지 않지만 - 잘 해주길 바란다.
그런데, 그런데, 그녀가 당선되고 이틀 만에 한 명의 노동자가 자살을 했다. 그가 느꼈던 절망과 고통을 생각하니 지금도 다시 가슴이 아프다. 그의 명복을 빈다. 신을 믿지는 않지만, 그를 위해 기도 한다(그리고 나니 다시 답답해진다. 우린 언제부터 이렇게 남의 아픔과 죽음에 둔감해졌단 말인가!). 그리고보니 어쩜 당연하겠지만 그의 죽음에 대통령과 대통령 당선자는 한 마디 언급도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다시 한숨이 나온다.
두서가 없지만, 이쯤 써놓고 나니 조금 후련하다. 답은 찾지 못했지만 그래도 조금 기분이 나아졌다. 그럼에도 앞으로 한동안은 괜찮지 않을 것 같다. 비록 겉으로는 괜찮은 것처럼 보일지라도 말이다. 다시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 이 글을 썼다.
당부 中(꽃다지)
허나 젊음만으로 어쩔 수 없는
분노하는 것만으론 어쩔 수 없는
생각했던 것보단 더 단단하고
복잡한 세상 앞에서 우린 무너졌지
이리로 저리로 불안한 미래를 향해 떠나갔고
손에 잡힐 것 같던 그 모든 꿈들도 떠나갔지
허나 친구여 서러워 말아라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아직 많으니
후회도 말아라 친구여 다시 돌아간대도
우린 그 자리에서 만날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