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ve Peace A Chance'에 해당되는 글 14건

  1. 2025.02.18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 1
  2. 2023.07.24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나라.
  3. 2022.10.31 애도와 위로
  4. 2020.02.27 미드: 웨스트윙 후기
  5. 2019.08.17 영화 김복동 한 줄 평
  6. 2019.07.24 고양이와 쥐
  7. 2019.06.18 [미드]체르노빌 후기
  8. 2019.04.16 잊을 수 없는 날
  9. 2018.04.13 부활절
  10. 2016.11.25 어떤 날.

배우 김새론이 죽었다. 자살인 것 같다. 오래 전 영화 '아저씨'에서 보고 딱히 기억은 없었다. 그리고 들은 소식이 음주운전과 그후의 각종 구설이다. 그리곤 이렇게 됐다. 

그의 소식을 들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왜 이리 가혹한가?' 사람은 누구나 실수와 잘못을 한다. 어떤 잘못은 사회적 규범을 벗어나기도 하고 또 어떤 잘못은 법을 어기기도 한다. 그래서 처벌을 받는다. 여기까진 당연하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법의 처벌을 받아도 우리는 여전히 서로에게 가혹하다. 

물론 범법자는 처벌 받음으로 그 죄값을 다 치렀다. 물론 법이 정한 형량이 너무 약해보이고 못마땅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입법을 한 국회와 구형을 한 검찰(행정부)과 선고를 한 사법부에 있지, 피의자의 잘못은 아니다. 또 어떤 범죄자는 용서 받기 어렵기도 하다. 상습범이나 아동성폭행 같은 경우가 그렇다. 하지만 그 경우라도 죄값을 치르고 나오면 먹고 살 길은 마련해 줘야 한다. 

하지만 이 글은 범죄자를 옹호하려는 글이 아니다. 그들을 보는 가혹한 시선이 바로 우리 스스로에게 향하는 시선 같아서 쓰는 글이다. 하나의 실수, 한 번의 잘못에 대해 우리는 서로에게 너무 가혹하다. 김새론 같은 연예인은 더 많은 대중에게 조리돌림 당할 뿐, 우리의 실수와 잘못도 주변 사람의 구설에 오르는 일은 흔하다. 

사회 시스템도 그렇다. 실패가 용납되지 않는다. 좋은 대학을 가야한다고 말하고, 좋은 대학을 가면 좋은 직장을 가야한다고 말한다. 좋은 직장을 가기 위해선 '첫 직장'이 중요하다고 하고, 좋은 첫 직장을 가기 위해서는 또 여러 경력(소위 스펙)을 쌓아야 한다. 그렇게 해도 좋은 직장 가기는 어렵다. 그 수가 적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회의 문제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쉽게 개인의 게으름으로 치부해 버린다. 그리고 그렇게 '실패한' 개인은 좌절한다. 

좋은 직장을 가도 끝난 것이 아니다. 퇴직까지 남은 시간은 20년 정도, 그 안에서도 실패가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럼 또 경쟁에서 탈락한다. 이렇듯 실패는 너무 흔하다. 그렇게 실패한 사람에게 우리 사회는 낙인을 찍는다. 도태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네가 노력하지 않아서, 네 능력이 부족해서.. 언제든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그럼 잘못은? 잘못도 흔하다. 계속 말하지만 음주운전 등의 불법을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불법을 저지르면 죄값을 치르면 된다. 문제는 그 후의 일이다. 같은 잘못을 계속 저지르면 문제가 되겠지만, 한 번 잘못을 한 사람에게 주홍글씨를 새기고 조리돌림 하지는 말아야한다. 스스로가 사회에서 받는 온갖 스트레스를 잘못한 한 개인에게 풀어버리는 것 같다. 

잘못하고 실수하고.. 인간이 살면서 늘 저지르는 일이다. 그런데 그것들에 우리 사회는 가혹하다. 연예인에게뿐만 아니라 우리 스스로에게도 그렇다. 그래서 잘못을 저지르고 실패한 사람은 스스로에게 가혹할만큼의 책임을 돌리고, 심한 경우에는 자살을 하게 된다. 그렇게 자살하는 사람이 하루에 40명이 넘는다. 사회에서 낙오되고 고립되었다고 생각하는 것도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왜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서로에게 그렇게 가혹한가? 나는 잘 모르겠다. 성별, 세대, 정치적 성향으로 나누어 서로가 서로를 조롱하고 증오하고, 조금만 삐끗하도 역시 비판받는 사회는 언제부터 만들어진 것일까? 어떻게 해야 우린 서로에게 조금 더 관대할 수 있을까? 정말 모르겠다.. 

모르겠는데, 답답한 마음에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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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

홍수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 

실종된 사람을 찾던 해병대원은 결국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젊은 교사가 자살을 했다. 

불과 며칠 동안 일어난 일이다. 

 

무능을 만드는 부적절한 시스템, 

무너진 교권, 

군인에 대한 인식 등등 

원인을 찾으면 한도끝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책임이다. 

난 한국사회에서 책임을 기꺼이 지는 사람을 많이 보지 못했다. 

운이 좋게 내 주변에는 책임의 무게를 아는 사람들이 있지만, 

조직이 커질 수록 모두 시스템 속에 숨으려 할 뿐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한다. 

 

어렵고 힘든 일은 가장 책임 있고 힘 있는 사람이 담당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힘 없고, 책임 질 수 없는 사람이 맡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직에서 그런 일을 맡게 되면 사람들은 그것을 '좌천', 심지어 '징계'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고가 나면 그 담당자가 모든 책임을 지는 구조다. 

그 일을 지시한 사람도, 그 업무를 맡게 한 사람도 책임지지 않는다. 

오직 질책만 할 뿐이다. 

 

이제 막 인사발령을 새로 받아 업무 파악도 힘든 시점에 터지는 불행,

명령에 의해 위험한 상황에서 수색에 투입되서 일어나는 사고,

악성 민원에 시달려도 어디 하나 하소연 할 수 없는 부조리에서 일어나는 비극이지만

누구 하나 '내 잘못'이라고 나서고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오송 지하차도 유가족들의 인터뷰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들은 사과와 책임진다는 말을 들어본적이 없다고 했다.

 

높은 분들은 실무자들을 질책할 뿐이다.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으니, 

책임을 회피하는 방법으로 시스템이 발전한다. 

 

어디서 본 일화이다. 폭설이 왔을 때 

미군은 영관급 이상부터 출근했고

한국군은 사병들부터 출근했다고 한다. 

영관급 이상이 출근한 이유는 명확했다. 

그들이 판단하고 지시하고 책임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사병들이 나와서 뭘 할 수 있겠는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사회

우리 사회의 불행의 원인 중 하나이지 않을까.

 

 

2023년 7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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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부터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일요일 아침에 무슨 일이냐고 하겠지만, 주말 내내 학술회의에서 발표할 글을 쓰는 중이었다. 처음부터 슬픔이 차오르고, 눈물이 나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화가 나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서울 한복판에서 150명 넘는 사람이 압사를 당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고, 아무런 안전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슬픔은 잠시 후에 찾아왔다. 보고 싶지 않았는데, SNS에서 모자이크 처리되지 않은 영상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사고를 당한 사람들이 길에 늘어져 누워 있었고, 사고를 당하지 않은 사람들은 다급하게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었다. 끔찍한 것은 그렇게 심폐소생술을 해도 꼼짝도 하지 않던 사고 피해자들이었다. 얼른 영상을 껐지만, 영상은 내내 뇌리에 남았고, 조금 더 일찍 끄지 못한 내 자신을 자책했다. 그리고 슬픔이 밀려왔다. 피해자의 대부분은 20대였다고 한다. 한창 젊음을 발산할 나이다. 술도 마시고,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아다니며, 객기도 한 번쯤 부려볼 시절이다. 돌아보면 나의 20대도 그러했다. 할로윈과 같은 축제는 없었지만, 대학 동기들과 어울려 다니며 술도 많이 마시고 객기도 좀 부리고 그랬다. 지금도 후회되는 것이 있다면 그때 조금 더 놀지 못한 것이다. 이제는 그 시절처럼 놀 수 없다.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이고, 이태원에 나간 젊은이들도 그 때를 즐기러 나갔을 뿐이다. 거기서 그런 사고를 당했을 줄 누가 알았을까. 친구를 잃고 생존한 피해자들의 인터뷰를 보고 들었다. 그제야 눈물이 났다. 저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저 상처를 어떻게 할 것인가? 저 슬픔은 또 어떻게 감당해야 할 것인가? 이런 걱정이 앞섰고, 죽은 이들의 젊음과 죽기 직전의 고통과 두려움에 마음이 저렸다. 가족들의 슬픔은 상상하기도 힘들었다. 150명 모두 누군가의 친구고 가족이었을 것이다. 각자 모두 꿈을 갖고 살았을 것이다. 그런 생명들이 어처구니없이 죽었다. 애도는 이런 죽음에 적당한 말이다.

하지만 진정한 애도가 되려면, 어처구니없는 이 일의 원인을 밝히는 것이다. 이것은 지난하고 지저분할 수밖에 없다. 벌써 책임 있는 위치의 사람들은 서로 본인의 책임이 아니라고 회피한다. 잘못은 젊음을 발산하러 나온 젊은 사람들 몫이라도 떠드는 목소리도 들린다. 외국의 축제인 할로윈을 철없이 즐기러 나온 개념 없는 젊은이들 탓이라는 것이다. 이런 목소리에서 피해자도 그들인데, 가해자도 그들이 된다. 애도는 하지만 잘못은 그들에게 있다는 이상한 소리를 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원인을 밝히는 일이 어디 쉽고 깨끗하겠는가. 책임 있는 모든 사람들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지만 모두 한 마디씩 위로의 말은 전한다. 위로가 될 리 없다. 위로는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책임질 사람이 책임을 지고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할 때, 조금이나마 피해자들은 위로 받을 수 있다. 이런 분위기이면 잘못한 사람을 ‘색출’해서 ‘처벌’하는 것으로 끝내려 할 것 같다. 아무도 위로 받을 수 없는 방법이다. 세월호가 아직까지도 현재 진행형인 이유는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곳에도 ‘색출’과 ‘처벌’만 있을 뿐이었다.

이런 큰 사건에서 위로는 모두에게 필요하다. 이 상처는 피해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견뎌야하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아마 잘 해나갈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고, 이번 참사를 여러 방식으로 기억하며 추모할 것이다. 상처는 차츰 시간이 흐르며 그렇게 치유되어 갈 것이다. 이 치유에 방해가 되는 것은 잘못을 회피하려는 저 권력들뿐이다. 혹자들은 이 사고를 정치화 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 말 자체가 정치적이다. 세상에 정치가 아닌 것은 없다. 정치는 정치권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 모든 것에서 일어난다. 인간관계도 일종의 정치가 아니던가. 더욱이 행정부와 입법부는 정치의 작용인 선거로 선출되고, 선출된 사람들의 선택과 결정에 의해서 많은 것들이 결정된다. 그 결정에 의해 우리는 이익을 얻기도 하고 피해를 당하기도 한다. 행정의 부재는 정치의 문제이고, 이 사건의 책임은 결국 정치적인 책임이다. 그렇게 책임을 져야 진심어린 애도가 되고, 위로가 된다. 154명이 목숨을 잃었다. 부상자도 많다. 그 가족과 친구들까지 생각하면 수많은 사람의 일상이 무너져 내렸다. ‘놀러가서 죽은 사람들의 장례를 국가가 왜 지원해주고, 왜 애도해야 하냐’는 댓글을 봤다. 이번 참사는 이런 무책임한 생각이 만든 일이다.

친구와 친구, 가족과 가족 사이에서 애도와 위로는 말로도 충분할 수 있다. 아니 어쩌면 말로 밖에 전할 수 없다. 하지만 국가의 애도와 위로는 말로 끝날 수 없다. 색출과 처벌이 아닌, 반성과 사과를 통한 애도와 위로가 이루어지길 진심으로 기원하며, 그러기 위해 끝까지 사건의 원인을 따져 보기를 모든 정치인들과 언론에 간곡하게 부탁한다. 다시 한 번 모든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애도를 표하며, 부상자들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회복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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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est wing 정주행 완료.

소감 1.

우리가 흔히 미국 대통령의 집무처로 알고 있는 백악관은 대통령 집무실과 보좌관들이 생활하는 West wing과 대통령의 사저인 Eest wing으로 나뉜다. 즉 웨스트 윙이라고 하면 실질적으로 미국의 정치가 일어나는 공간을 의미한다.

먼저 이 드라마의 약점부터 이야기 하자. 첫째, 한국 사람이 보기에는 너무 어렵다. 한국사람 가운데, 미국 연방 하원의원의 임기가 2년이며, 각 주의 인구 비례에 마다 뽑히고, 세입 징수에 관한 권리를 갖으며, 상원은 각 주의 인구에 상관없이 2명이 선출되고, 임기가 6년이며, 2년마다 1/3을 뽑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와 별개로 미국의 역사와 정치를 어느 정도 이해해야 대략 감을 잡을 수 있을 정도이다.

둘째, 대통령을(Josiah "Jed" Bartlet: 마틴쉰 분) 비롯한 모든 백악관의 인물들이 너무 선하다. 의회는 재선과 예산을 두고 전쟁을 벌이지만, 백악관의 사람들은 오직 선의를 갖고 이들과 맞서며 ‘세계(!)’를 운영한다. 심지어 이들은 자기들이 속한 민주당과의 대립도 서슴지 않는다. 아마 이들 정도의 선의와 능력을 갖은 사람들이 백악관을 장악하고, 8년 간 나라를 운영한다면 최소한 세상은 이렇지 않을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셋째, 끊임없는 사건과 사고들로 인한 현실성 결여. 물론 미국이란 거대한 제국의 수뇌부가 8년 간 소소한 일만 겪진 않을 것 같다. 현실에서도 부시 부자는 재임기간 동안 두 번이나 이라크를 침공했고, 아들 부시는 9.11이란 비극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드라마에서와 같이 미국내 핵발전소가 폭발 직전까지 가고, 대통령 일행이 저격당하고, 미국 대표단이 팔레스타인에서 폭탄테러를 당하는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극중 수석비서관인 리오 맥게리(Leo McGarry: 존 스펜서 분)를 ‘It’s real world“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반대로 최대의 약점도 바로 현실성일 수 있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가 갖는 가장 큰 강점 역시 현실성이다. 먼저 대통령인 바틀렛. 바틀렛은 민주당의 이념으로 가득한 이상주의자이다. 하지만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개인 비서를 둘 정도로 부유한 집안의 ‘도련님’이었고, 명문 사립고등학교를 거쳐 명문대를 나와 경제학을 전공하고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전형적인 미국의 기득권층인 것이다. 미국의 대통령은 이런 사람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부시와 케리가 미국 대선에서 붙었을 때, 한 풍자 프로그램에서 부시와 케리를 각각 까다가, 결국 둘을 같이 등장시키며 ‘미국은 너희들 나라’라고 한 것을 보고 깊이 공감한 기억이 떠오른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오바마의 당선은 첫 흑인 대통령이라는 상징성을 보여주고, 변화를 상징하지만 그 역시 하버드 출신이다. 바틀렛(집안)은 브라질의 룰라와 같이 평범한 노동자에서 대통령이 되는 것은 미국에선 불가능 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또 다른 장점은 살아 있는 인물 묘사이다. 웨스트윙에 나오는 사람들은 완벽하지 않다. 완벽주의자로 백악관에서 알리고 싶지 않은 일들을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서도 교묘하게 기자들의 질문을 피하는 대변인 C.J 크렉(Claudia Jean "C.J." Cregg)이 흥분하여 실수한다. 대통령은 항상 유쾌하고, 관대한 듯 보이지만 큰 실수를 한 참모에겐 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가족이 연관된 일에는 쉽게 흥분해 버리고 만다. 공보국장(Communications Director)인 토비 지글러(Toby Ziegler)는 이상주의적 성향이 강해, 현실적 선택을 하는 대통령의 도덕심을 항상 자극하는데, 어떤 때는 주체하지를 못해 대통령 앞에서 고함을 치고야 만다. 이 드라마는 이러한 완벽한 것 같지만 약점이 있는 인간들 사이의 미묘한 감정들(갈등, 애정 등등)을 그려내는 능력은 그야 말로 탁월하다(다만 작가 아론소킨Aaron Sorkin이 시즌 4를 마지막으로 빠지면서 이러한 섬세한 인물 묘사는 사라지고 정치만 남는다).

지금의 미국의 현실을 비판하는 것에 있어서도 이 드라마는 탁월하다. 형편없는 공교육 시스템과, 의료보험제도는 시즌1~7편을 아우르는 주제이다. 외국에 군대를 파견해 놓고 그것 때문에 허덕이는 현실은 드라마에서도 변함이 없다. ‘민주당은 군대를 줄이려고 하면서도 모든 곳에 파병하려하고, 공화당은 군대를 늘리자고 하면서 어느 곳에도 파견하려하지 않는다.’라는 말은 미국의 현실을 잘 반영한 말이다. 낙태문제, 동성애 등 인권에 대한 문제제기도 시즌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이다. 중국의 인권을 이야기하자 한 보좌관이 ‘우리는 18세 이하를 사형시키는 4개국 가운데 하나(4개국은 정확하지 않다)’라고 말하는 것은 작가의 통렬한 자기비판이다. 총기의 소지를 헌법이 보장하고 있다는 공화당원의 주장에, 스위스, 일본, 스웨덴 등등을 나라를 열거하며 이 나라를 다 합치면 미국인구가 되는데, 일년 간 이 나라에서 총에 맞아 죽는 사람은 400여명이고, 우리(미국)는 4만 명이다. 총이 우리를 안전하게 해 주었는가?라는 질문에 공화당이 어떻게 답할지는 나도 궁금해질 정도이다.

드라마를 보는 도중 평가가 궁금해 검색을 하는 도중 예전 SBS에서 방영했던 ‘대물’이 한국의 웨스트 윙이 될 수 있을지를 궁금해 하는 기사를 봤다. 난 고현정을 좋아해서 대물을 봤는데, 비교하기기 민망한 수준이다. 웨스트 윙이 정치 드라마라면, 대물은 그냥 정치를 미워하지 말라는 캠패인이다. 한국의 현실에서 공중파 드라마가 특정 정당의 이슈를 지지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고, 그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한국의 정치 드라마는 계속 민망한 수준일 것이다.

미드는 보통 한번 보고 마는데, 시즌 1~7을 모두 본 지금 다시 시즌 1의 1편이 보고 싶어졌다. 큰일이다.

2012.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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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남긴 아픔, 세상을 바꾼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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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꿈 이야기이다

지나가는 데 흰색에 갈색 무늬가 있는 예쁜 생쥐 한마리가 보였다. 곧 그 뒤를 흰색에 노란 무늬를 한 고양이가 쫓았다. 쥐는 대문 위로 올라가 이어진 담장으로 도망갔는데, 고양이는 쥐를 금방 따라 잡았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그런데 쥐를 바로 앞에 두고 고양이는 쥐를 잡지 못했고, 쥐는 유유히 사라졌다. 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고양이가 내 앞을 지났는데, 앗뿔싸! 그 고양이는 두 눈이 멀었고, 너무 말라 곧 죽을 것 같아 보였다. 아까 그 예쁜 쥐를 놓친 것이 그 고양이에겐 목숨이 걸린 일이었던 것이다. 고양이와 쥐. 자연의 생태는 냉혹하다지만, 그 안에서 누구의 편을 들 수 없던 상황과 알 수 없는 기분을 느끼며 꿈에서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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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잘만들기로 유명한 - 왕좌의 게임, 밴드오브브라더스, 더 와이어 등등 - 미국 HBO에서 체르노빌이라는 5부작 드라마를 제작했다. 일단 평점과 시청율은 왕좌의 게임을 넘었다고 하는데, 평점을 차치한 개인적인 감상으로도 짜임새가 매우 좋은 드라마이다.

드라마는 체르노빌 사고의 그 순간에서 시작한다. 승진을 앞두고 무리한 실험을 강행한 관료, 자신에게 피해가 올까 두려워 피해를 감추기에 급급한 정치인, 그리고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당과 무고한 시민들을 사지로 모는 국가. 체르노빌은 이 모든 것이 환상적으로 하모니를 이룬 비극이었다는 것을 드라마는 담담히 보여준다.

반면 양심을 지키려는 학자, 비극을 목격한 후 책임을 목도한 극소수의 관료, 죽음의 위험을 알고도 기꺼이 '바이오로봇'을 자쳐한 시민들에 의해 체르노빌은 최악의 상황을 모면한다.

결국 드라마는 부패하고 무능한 사람들의 잘못을 선한 사람들이 수습하며, 부패하고 무능한 이들은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고, 피해는 오롯이 선한 사람들의 것이 되는 이 뻔하고 진부한 플룻인데, 이것이 역사적 사실인 것이 슬프고 무섭다. 
※ 이것이 창작된 스토리였다면, 진부하고 뻔하며, 무능이 이어지는 것이 개연성이 없다며 비판 받았을 것이다.

드라마에서 잘 보여주는 장면 가운데 하나는 투입된 직원과 소방관들이 방사능에 노출되고 피폭되어 죽어가는 장면이다. 그 자체로 끔찍하고 보기 어렵다. 그리고 이것이 철저한 고증을 거친 것이라는 것이 더 무섭다.

한국에서 탈원전 정책이 논란이 되는 것을 알고 미국 HBO에서 이런 드라마를 만들었을리는 없다. 하지만 참 시의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 절대로 안전한 것이라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학문의 절대가 없듯, 안전에도 절대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학문에서 절대라고 말하는 사람은 사기꾼일 가능성이 높듯, 안전에서 절대라고 말하는 사람도 사기꾼일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원전 정책, 원전의 안전문제에 대해서는 내가 잘 알지 못한다. 내가 지지하는 방향성은 내가 갖은 당위와 상식의 근거한 것일 뿐이지 과학적 근거가 기반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느쪽이건 안전문제에 대해서는 절대를 언급하지 말고 재검토할 필요는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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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지난 일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아주 중요한 일이 아닌 이상 어떤 상황을 상세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날은 명확히 기억한다. 아침에 뉴스를 보면서 구조소식에 안도했고, 나중에 구조되지 못했다라는 소식에 초조해했고, 침몰 후에는 절망했다. 울기도 많이 울었다. 침몰되기 전 사람들이 느꼈을 두려움과 공포는 너무나도 쉽게 상상됐기 때문이다.

 

300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지만, 아직 진상은 밝혀지지 않았다. 당시 행정부의 누구도 자기 책임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사고 자체는 정부의 책임이 아닐 수도 있지만, 수습을 제대로 못한 것은 정부의 책임이었지만,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때 나는 당시 정부에 대해 완전하게 신뢰를 잃었다. 나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 같다. 이후 촛불집회에서 나온 이게 나라냐는 단지 국정농단 때문에 나온 구호가 아니었다. 그동안 쌓인 불신이 표출된 것이었다.

 

물론 사회의 책임도 있다. 과적을 관례라며 눈감아주고, 노후 한 기종의 배를 돈을 위해서 운영할 수 있게 규정을 바꿨다. 이런 사회의 관례와 돈만 벌면 된다는 천박한 생각이 이 큰 사고를 만들었다. 거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특히 그런 사회를 만든 나를 포함한 기성세대는 더욱 미안해 해야 한다. 우리들의 천박함이 그들을 죽였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의 일부는 반성하지 않는다. 막말도 서슴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이 정치를 하겠다고 한다. 그들이 정권을 잡는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 반성하지 않는 사람들이 하는 정치가 좋을 리 없기 때문이다.

 

엊그제 같은데 벌써 5년이다. 얼마나 더 살지 알 수 없지만, 그날까지 2014416일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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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Give Peace A Chance 2018. 4. 13. 22:29

부활절.


차별과 미움, 증오가 넘치는 세상에

당신의 사랑이 다시 살아나는 오늘이길.

(2018.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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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

Give Peace A Chance 2016. 11. 25. 18:43

아침에 일어나 본 하늘이 흐렸다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밥을 먹었다
일을 하러 나가 아이들을 만났다
오늘따라 아이들 눈을 마주 볼 수 없다
아이들을 배불리 먹여 보냈다
길을 걸으니 흐린 하늘이 어둑해졌다
다시 아이들이 보였다
저 아이들은 배불리 먹었을까?
아이들 볼 낯이 없어 따라 걸었다
집에와서 청소를 하고 샤워를 했다
밤이 깊었지만 어둠은 더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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