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엄’이라는 이름 아래 박물관과 미술관은 하나가 될 수 있을까
(다른 글을 보고 수정을 좀 했습니다)
언젠가부터 박물관과 미술관을 통틀어 ‘뮤지엄(Museum)’이라고 부르는 일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조금 불편하게 느껴졌다. 한국어에는 이미 ‘박물관’과 ‘미술관’이라는 분명한 단어가 있는데, 굳이 영어인 뮤지엄을 가져와야 할 이유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뮤지엄’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영어의 museum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박물관’보다 넓은 개념이다. 역사박물관도 museum이고 자연사박물관도 museum이며 미술관 역시 museum이다. 국제박물관협의회(ICOM)의 정의 역시 museum을 소장품의 종류에 따라 구분하기보다는 수집·보존·연구·해석·전시와 교육 등의 기능을 수행하는 사회적 기관으로 정의한다.
한국어에는 이를 간결하게 포괄할 적당한 상위개념어가 없다. ‘문화기관’이라고 하면 도서관이나 공연장까지 포함되어 지나치게 넓고, ‘전시기관’이라고 하면 박물관과 미술관의 중요한 기능인 수집·보존·연구가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매번 ‘박물관·미술관’이라고 병기하는 것도 번거롭다.
더욱이 한국의 일상적인 언어생활에서는 ‘박물관’과 ‘미술관’이 거의 대등한 별개의 범주처럼 굳어졌다. 미술관을 가리켜 박물관이라고 하면 대개의 한국인은 어색하게 느낄 것이다. 따라서 이 둘을 다시 하나의 상위범주로 묶어 이야기하려 할 때 ‘뮤지엄’이라는 외래어를 사용하는 것은 일종의 궁여지책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박물관과 미술관을 아우르는 상위개념으로 ‘뮤지엄’을 사용하는 것까지 굳이 거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미술관이 뮤지엄에 포함된다는 것과 박물관과 미술관이 동일한 전문영역이라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도 이 흥미로운 관계를 보여준다. 법률은 박물관과 미술관을 하나의 제도 안에서 다루면서, 미술관을 “박물관 중에서 특히” 미술에 관한 자료를 수집·관리·보존·조사·연구·전시·교육하는 시설로 정의한다. 법적 개념으로 보면 미술관은 넓은 의미의 박물관, 다시 말해 뮤지엄의 한 종류인 셈이다.
최근의 관련 논의를 보면, 한국에서 박물관과 미술관이라는 용어가 별개의 범주처럼 자리 잡았지만 국제적인 개념에서 보자면 미술관은 Art Museum, 즉 museum의 한 유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지적은 충분히 타당하다.
그러나 오히려 여기에서 더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같은 뮤지엄에 속한다는 사실이 각각의 전문성과 역할까지 같다는 뜻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연사박물관과 역사박물관이 모두 museum이라고 해서 두 기관에 필요한 전문성이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연사박물관에서는 생물학·지질학·분류학 등의 전문성이 필요하고, 역사박물관에서는 역사학·고고학·민속학·서지학 등의 전문성이 중요하다. 같은 ‘뮤지엄’ 안에서도 대상에 따라 학문적 기반과 연구방법은 크게 달라진다.
미술관 역시 마찬가지다. 역사박물관의 학예사가 고문서와 유물을 다룬다고 생각해보자. 사료비판과 역사적 맥락에 대한 이해, 고문서 판독, 유물의 편년과 진위, 출토 맥락과 소장 경위 등에 대한 전문지식이 필요하다. 반면 미술관에서는 미술사와 미학, 작가와 작품에 대한 연구, 동시대 미술의 흐름과 비평, 작품 설치와 전시기획 등에서 전문성이 형성된다. 물론 두 영역은 수집·보존·연구·전시·교육이라는 공통된 기능을 가지고 있다. 현대의 박물관과 미술관은 디지털 아카이빙, 관람객 연구, 교육 프로그램, 소장품 관리 등에서도 점점 더 많은 영역을 공유한다.
그러나 기능을 공유한다는 것과 전문성을 공유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런던의 British Museum과 뉴욕의 Metropolitan Museum of Art는 모두 이름에 Museum을 사용한다. 그러나 두 기관의 정체성과 학문적 기반은 상당히 다르다. British Museum은 세계 여러 지역의 고고·역사·문화 자료를 통해 긴 인간의 역사를 다루는 기관이고, Metropolitan Museum of Art는 시대와 지역을 넘나드는 미술작품을 수집하고 연구하고 보존하고 전시하는 미술관이다.
두 곳 모두 museum이지만, 아무도 British Museum의 고고학·고대사 분야 큐레이터와 Met의 현대미술 큐레이터가 같은 전문영역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Smithsonian Institution을 보아도 비슷하다. 하나의 거대한 뮤지엄 체계 안에 미국사, 자연사, 항공우주, 아프리카미술, 아시아미술 등 서로 다른 분야의 박물관과 미술관이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museum’이라는 공통의 제도적 우산 아래 있다는 사실이지, 모든 기관과 전문가의 전문성이 동일하다는 것이 아니다.
가까운 일본도 넓은 의미의 ‘박물관’을 법적 상위범주로 사용하면서 미술관을 그 안에 포함시킨다. 그렇다고 미술관과 역사박물관, 자연사박물관의 전문성을 하나로 취급하지는 않는다.
결국 포괄과 동일화는 구별해야 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역할을 둘러싼 최근의 논의 역시 이 점에서 흥미롭다. 미술관이 museum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과, 미술관이 시각예술과 관련된 모든 정책적 기능을 담당해야 한다고 보는 것은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미술작품을 수집·보존·연구하는 미술관의 기능과 예술가의 창작을 지원하고 실험적인 예술 활동을 촉진하는 기관의 기능은 필요에 따라 구분될 수 있다.
오히려 이런 논의는 ‘뮤지엄’이라는 하나의 이름 안에서도 기관의 목적과 전문성을 세밀하게 구별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필요한 ‘뮤지엄 정책’이란 무엇일까. 나는 박물관과 미술관을 억지로 하나의 전문영역으로 통합하는 정책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 반대여야 한다. 뮤지엄이라는 하나의 제도적 우산 아래 역사·고고·민속·자연사·과학·미술 등 서로 다른 전문영역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뮤지엄 정책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뮤지엄 정책’, ‘뮤지엄 전문가’, ‘뮤지엄의 미래’ 같은 표현을 사용할 때에는 조금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누군가 자신의 전문영역을 넘어 ‘뮤지엄 전체’를 이야기한다면, 그 말이 단순히 박물관과 미술관을 포괄하기 위해 선택한 편리한 상위개념인지, 아니면 어느 한 분야에서 형성된 경험과 논리를 전체 뮤지엄 영역의 기준으로 확장하려는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자연사박물관 전문가가 자신의 경험을 근거로 현대미술관의 수집과 전시정책까지 대표해서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쉽게 그 어색함을 느낄 것이다. 역사박물관 전문가가 자연사박물관의 연구 방향을 자신의 전문영역인 것처럼 말해도 마찬가지다.
미술관과 다른 박물관 사이에서도 같은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 이것은 서로의 영역을 나누어 벽을 세우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제대로 협력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전문성이 어디에서 출발하는지를 인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용어는 때때로 영역을 만들고, 영역은 다시 정책과 예산, 조직과 인사의 범위를 결정한다. 그래서 누가 ‘뮤지엄’을 말하는가, 그 사람이 말하는 ‘뮤지엄’에는 어떤 기관과 어떤 전문가들이 포함되어 있는가 하는 문제는 단순한 번역어 선택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나는 박물관과 미술관을 포괄하는 상위개념으로 ‘뮤지엄’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인정한다. 미술관 역시 분명 뮤지엄이다(영어로는 대체할 단어가 없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한 가지를 더 분명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뮤지엄은 하나의 우산일 수 있지만, 그 아래 존재하는 전문성까지 하나인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British Museum과 Metropolitan Museum of Art가 모두 Museum이면서 각기 다른 역사와 학문적 기반, 소장품과 전문인력을 발전시켜 온 것처럼, 한국의 박물관과 미술관도 하나의 제도적 범주 안에서 얼마든지 협력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협력이 각 분야가 오랫동안 축적해 온 전문성의 차이를 지우는 방식이어서는 곤란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박물관과 미술관을 하나로 볼 것이냐, 둘로 볼 것이냐가 아니다. 개념적으로는 포괄하되, 전문적으로는 구별하는 것, 그리고 서로 다른 전문성을 인정한 상태에서 제도와 정책을 연결하는 것이다.
‘뮤지엄’이라는 이름이 의미 있으려면 서로 다른 영역을 하나로 만들어버리는 이름이 아니라, 서로 다른 전문성을 품을 수 있는 이름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