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23.07.12 늦은 밤 친구와의 전화
  2. 2020.02.23 우즈베키스탄 – 지리의 중요성-Part4. 다시 타슈켄트
  3. 2018.01.21 20년
  4. 2017.12.26 친구의 육아


늦은 밤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어? 어제도 통화 했는데?’ 느낌이 좋지 않았다. 초등학교 동창이고 종종 통화를 하지만 몇 달에 한 번 정도였지, 어제통화하고 오늘 다시 통화하는 일은 드물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휴가 차 필리핀에 있었을 때도 전화가 왔었다. 난 문자로 ‘휴가로 해외에 왔어’ 라고 보냈고, 친구는 ‘언제와?’라고 다시 질문을 했다. 난 ‘내일’이라고 말했고, 도착한 다음 날 전화가 왔다. 어제의 통화는 평소와 같았는데, 뭔가 좀 우울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리고 오늘 다시 전화가 왔을 때야 난 ‘무슨 일이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느낌과 달리 전화는 어제와 같이 평범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유쾌한 비난을 쏟아 냈고, 많이 웃었다. 남편, 아이들과 함께 사는 친구는 산책을 나와 전화를 하는 듯했다. 그렇게 평범하게 흘러가던 대화는 점차 심각한 이야기로 접어들었다. 그 친구를 알게 된지 30년이 되어가지만, 난 그 친구가 그렇게 많은 고민과 어려움 속에서 사는지 알지 못했다.

공부를 잘하는 친구였다. 어릴 때부터 단정하고 밝은데다 공부도 잘해서 남학생들에게 인기도 많았다. 나도 잠시 좋아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친해지기 위해 엄청 노력했는데 이상하게 친해지면서 이성적인 감정이 사라졌다. 그것이 오랜 기간 나와 그 친구를 ‘친구’로 유지시켜 주었을 것이다. 공부를 잘하던 그 친구는 명문대 법대에 진학했다. 그 뒤로도 우리는 일 년에 한 번 쯤 만나고 6번 쯤 통화하는 관계를 유지했다. 좀 특이 했던 것은 그 친구였는데, 종종 자기 남자친구를 나에게 소개해 주고 나의 평을 듣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결혼을 한다고 했다. 새로 사귀는 남자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좀 급하게 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워낙 똑똑하고 야무진 친구여서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결혼을 한 친구는 남편을 따라 해외로 갔고, 연락은 뜸해졌다. 다시 연락을 한 것은 귀국한 이후였다. 돌아 왔을 때 친구는 두 아이의 엄마였다. 

친구의 가족은 화목했는데, 문제는 지금 남편과 가족이 아니었다. 나와 알던 시절의 친구의 가족사가 그를 힘들게 했다. 친구는 대학을 다닐 당시, 취업을 했을 당시의 힘들었던 일을 처음으로 나에게 이야기했다. 자기가 왜 고등학교까지 공부만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처음 들었다. 그리고는 울었다. 우는 모습은 종종 봤지만, 그렇게 서럽게 우는 것은 처음이었다. 내 평생 가장 말없이 남의 말을 듣기만 했다. 상갓집도 많이 갔지만, 이럴 땐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물론 울음을 그치고, 다시 일상의 이야기도 돌아갔고, 우린 다시 서로에 대해 유쾌한 비난을 쏟아 부으며 전화를 마쳤다. 그래야만 전화를 마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상대를 얼마만큼 알고 있을까? 전화를 끊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친하다고 생각한 사람들, 내가 잘 안다고 생각한 사람들을 나는 사실 조금도 모르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30년 지기 친구의 가장 중요했던, 그 힘들었던 순간도 난 몰랐으니까. 통화 도중 친구가 물었다. ‘너 나 얼마나 알지?’. 난 잠시 머뭇거리다 답했다. ‘이렇게 통화할 만큼?’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그렇네.’

답은 했지만, 난 그만큼이 얼만 큼인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 누구도 얼만 큼 안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또 그리고 그 힘든 시간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해 친구에게 많이 미안하다. 

그런 복잡한 마음에 밤늦게 걸려온 친구의 전화 한통에 밤새 뒤척여야 했다.

 

2022년 7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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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타슈켄트, 그리고 서울로

 

0215

타슈켄트로 돌아왔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친구가 가자는 술집에 갔는데, 예약 없이는 힘들어 보였다. 다시 택시를 타고 친구 집 근처의 Irish Pub으로 갔다. 거기도 자리는 없어보였는데 종업원이 한 쪽에 테이블과 의자를 놔 주었다. 덕분에 그곳에서 축구를 보며(아마도 바르셀로나와 헤타페의 경기), 맥주를 마셨다. 친구 집은 그곳에서 멀지 않아 걸어갔는데, 내가 짐을 놓고 와서 다시 그 거리를 왕복해야 했다. 아침에 여권 때문에 난리 친 것을 생각하면 수미일관한 하루였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샤워를 하고 곧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아이리쉬 펍과 먹은 양갈비. 이땐 사람이 많이 빠져 나간 뒤..

 

0216

공원, 그리고 우즈베키스탄에 대한 느낌과 물류.

친구 가족과 거대한 힐튼호텔이 지어지고 있는 근처 공원에서 밥을 먹으러 갔다. 그 공원은 다른 타슈켄트와는 또 달랐다. 현대식 높은 힐튼호텔의 모습이 그랬고, 서구식으로 관리된 공원이 그랬고, 식당의 분위기도 그러했으며, 완전히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호수의 모습이 그랬다. 문득 이 나라의 30년 후가 궁금해졌다.

내가 만난 이곳 사람들은 모두 친절하고, 정중했으며 성실했다. 이들이 잘 살지 못하는 것은 인간 개개인의 능력 부족이 아니라, 여러 환경이 만든 것이었다. 과거 부하라, 사마르칸트가 물류의 중심지에 있어 번성한 것이라면, 사방 어디도 바다와 맞닿아 있지 않는 이 나라는 물류비용 때문에 투자에서 소외되어 쇠퇴했다. 인건비가 싸고, 사람들이 성실해도 물류비용은 그것을 상쇄할 만큼 많이 소요된다. 이런 점에서 동남아시아와 크게 비교된다. 바다가 없어도 주변 국가들 중에 엄청난 소비시장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딱히 그런 것도 아니다. ‘지리결정론으로만 역사를 보는 것은 위험한 시각이지만, 지리가 인간 역사에 영향을 전혀 주지 않았다는 것도 이상한 생각이다. 과연 이 나라는 어떻게 될까?

친구에 이야기에 따르면 힐튼호텔, 도시 곳곳에서 진행되는 여러 공사들은 현 정부의 개방 정책의 일환으로 자본이 들어왔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한다. 앞으로 이 추세는 계속될 것이다. 이렇게 들어온 자본이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방식으로 돌아간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자본 시장 개방이 양극화를 촉진시키는 것을 너무 많이 보아 왔기에 걱정이 되기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정중하고, 성실하고 친절한 사람들이 더 잘 살기를 바라는 것 밖에는 없다.

우리가 먹은 식당과 먹은 브런치
공원. 보이는 큰 건물이 힐튼 호텔이다.
공원의 모습

마트

마트에 갔다. 마트는 꽤나 현대식이었다. 일층은 마트, 이층은 종합 쇼핑몰 같은 곳으로 음식을 팔기도 했다. 친구 아내가 아이와 함께 공룡을 보는 동안 친구와 나는 마트로 갔다. 치약을 사기 위해서였다. 한국에서는 굉장히 고가에 팔리는 치약이 이곳에서는 매우 저렴하다고 했다. 나는 그곳의 치약을 싹 담아오고 싶었지만, 작은 캐리어를 갖고 왔기 때문에 그렇게는 못하고 소소하게 18개 정도만 담아 왔다. 친구는 소소하게 과일을 몇 개 샀다. 프로 주부의 모습이 살짝 느껴졌다. 친구는 이곳 생활을 마무리 할 때쯤엔 정말 프로 주부가 되어 있을 것이다.

 

러시아 정교회 성당

집으로 돌아와 러시아 정교회 성당을 갔다. 친구 집에서 도보로 20여분 거리에 있었다. 성당은 생각보다 크고 화려했다. 내부는 촬영이 금지되어 있었다. 우리는 약간의 기부금을 내고 초를 갖고 와서 각자 소원을 빌었다. 어제 사마르칸트에서 빈 소원과 같은 것이었다. 내가 초를 제대로 세우지 못해 초가 넘어졌는데, 어떤 분이 다시 단단하게 고정시켜줬다. 누군가의 도움으로라도 소원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부의 분위기는 엄숙했다. 여성들은 스카프를 머리에 두르고 들어와야 하는 것 같았다. 러시아 정교회라서 그런지, 러시아계 사람들이 많이 보이기도 했다. 사실 우즈베키스탄은 무슬림이 많을 뿐이지 이슬람 국가는 아니다. 러시아정교회는 물론 유대교, 개신교 교회도 모두 존재 한다고 했다. 종교의 자유가 있다는 것이 조금 의외라고 느껴졌는데 그러고 보니 그제 갔던 사마르칸트의 맥주집에서는 돼지 소시지도 팔았던 것 같다.

그리고 시내를 조금 걸었다. '이런 도시였구나..' 란 생각이 들었다. 높은 건물은 많지 않지만, 잘 정비되고 깨끗한 도시란 느낌이 들었다. 곧 여길 떠난 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타슈켄트의 러시아 정교회 성당
걸으면서 본 타슈켄트 시내

짐정리와 공항, 그리고 감회

집에 들어와 짐을 정리했다. 갈 때는 단촐 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짐이 많았다. 치약이 컸다. 짐을 정리하고 잠시 잠을 청했다. 잠을 자고 일어나서 여행을 회상하는데, 일주일이 한 달 같았다. 매우 긴 여행을 보낸 것 같은 기분이다. 마리는 늘 걱정되기도 하고..

오랜만에 친구와 함께한 여행이라 좋았다. 난 대학 동기들과 국내 답사를 많이 다녔다. 경주, 부여, 공주, 해남, 대구, 합천, 태백 등등. 그때마다 항상 즐거웠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둘이 같이 간 여행은 없었지만, 어색할 것이라 생각한 적은 한 순간도 없었고 실제로도 그랬다. 그러기엔 둘이 만나 술을 마신 시간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동행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한 일인지 이번에 새삼 느끼기도 했다.

공항에 가서 표를 줬는데 탑승구가 적혀있지 않았다. 나중에 지나가는 항공사 직원에게 물어봐서 5번 게이트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탑승시간이 되어도 5번 게이트로 가는 문은 열리지 않았다. 거의 탑승 마감시간 15분을 남기고 문이 열렸고, 탑승이 시작 됐다. 비행기를 타고 나니 승무원이 대부분 한국인이다. 벌써 한국으로 돌아 간 기분이었다. 안녕 우즈베키스탄! 잘 지내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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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Imagine 2018. 1. 21. 21:16


말의 가시가 무뎌지고,
마음의 질투가 사그라들고,
잘나보이고 싶은 생각이 줄어드는 시간.

여전히 다 알지 못하는 미지의 존재,
숨기고 숨기고 싶은 것이 남아 있는 상대,
그것이 점차 무색해 지는 시간
다르다는 것을 새삼스레 알게 된 시간
세월의 무게가 조금은 느껴지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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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육아

Imagine 2017. 12. 26. 09:04

내가 결혼식 사회를 봐준 유일한 친구가 있다. 가장 친한 친구라고 말 할 수 있는 사람 가운데 한명이다. 좋은 직장을 다니는 덕분에 대학원 박사과정에 들어갈 수 있었던 친구는 기말고사가 일찍 끝났다고 내가 사는 동네로 왔다. 두 달 만에 만나는 것이라 맛난 음식도 먹고 술도 한잔 했다. 그리고 우리 집으로 가서 음악 틀어 놓고 다시 맥주를 마시며 또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절반은 우리의 인연에 관한 것이었다. 3때 딱 한 번 같은 반이었던 친구와 나는 졸업 후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대학도 다른 곳에 갔다. 친구는 이공계 전공이고 나는 문과였다. 성격도 정반대였다. 즉흥적이고, 말 많고, 장난기 많은 나와 달리 친구는 신중하고, 말이 없고 유머감각이 없었다(유머감각 없는 건 자기도 인정한다). 그럼에도 이렇게 지금까지 친한 친구로 남아 있는 '인연'에 관한 이야기 였다. 둘 모두 같이 지낸 세월이지만 다시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다.

 

나머지 절반은 친구의 육아 문제였다. 아이가 둘인 친구에 집에는 현재 부모님이 와 계신다고 했다. 예전에는 어머님만 오셨는데 한 명이 어린이집을 다니고, 막 돌이 지난 둘째는 집에 있기 때문에 둘째와 함께 첫째를 데리러 가는 일이 힘들어서 결국 아버님까지 오시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는 친구의 장모님과 장인어른이 모두 올라와서 아이를 돌본 적도 있었다.

 

친구 부부는 모두 꽤 돈을 잘 버는 직장에 다닌다. 결혼 6년차인 친구부부는 서울 외각이라면 벌써 집을 샀을 수도 있지만, 육아 때문에 여의도에서 반전세의 형태로 거주 중이다. 제수씨 직장이 여의도이고, 직장에 직장어린이집이 있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다(참고로 친구의 직장은 분당). 둘이 돈을 꽤 잘 버는데다 직장어린이집까지 갖춰져 있지만 아이 키우기는 만만치 않은 것이다.

 

적응 시키면 된다지만, 첫째도 4시면 데리고 온다고 한다. 어린이집에서 잘 놀긴 해도 역시 집을 가장 좋아해서 어차피 부모님(양가 중 어느 쪽이던)이 와 계시는 것이면 미리 데리고 가는 것이 정서상 좋을 것 같아서라고 한다. 둘째가 태어난 후로는 둘째와 지내는 시간을 늘리려는 계산도 있다고 했다. 친구는 이것이 가능한 것을 둘 모두의 수입이 괜찮고, 양가 부모님이 모두 현업에서 은퇴 하셨기 때문이라고 분석(?) 했다. 정확한 액수는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양가 부모님께 드리는 용돈도 적지는 않은 것 같다.

 

동생과 다른 친구들이 생각났다. 동생은 2월이면 쌍둥이를 출산한다. 동생 내외도 한동안은 맞벌이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나야 동생 인생에 크게 관여하지 않으며 살지만, 친구의 육아 이야기를 들으니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나마 동생네는 작지만 자기 집을 갖고 있다. 다른 친구들도 만만치 않다. 두 부부의 직장이 집과 너무 멀어 일찍부터 아이를 오랫동안 다른 곳에 맡겨야 하는 상황도 있고, 당장은 첫 번째 친구처럼 양가 부모님이 맡아 주지만 부모와 떨어지고 싶지 않아하는 아이를 걱정하는 친구도 있다.

 

낳으면 알아서 크는 시대는 지났다. 그렇다고 한 명만 벌어가며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경제적 여력을 가진 사람도 많지 않다. 아이를 낳은 친구들은 아이 때문에 너무나 행복해하지만, 그만큼의 걱정도 함께 한다. 아이는 사랑스럽다. 낳아보지 않는 나도 아이들의 웃는 얼굴만 봐도 행복해 질 때가 있다. 하지만 낳고 키우는 것은 현실이다. 출산율은 돈 몇 푼 지원한다고 오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좋은 환경에서 행복하게 아이가 자라길 바라는 친구들과, 동생 부부와, 이 땅의 모든 부모의 바람이 이뤄지길 기원한다(뭐 기원만 한다고 될 일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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