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느지막하게 일어났다. 잠을 꽤 푹잤다. 어제 사놓은 재료들로 아침을 먹었다.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시 내린다던 비는 예보대로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여행의 마지막 날 같은 느낌은 들지 않았다. 하루 더 남은 휴가 때문이었을까? 알 수 없는 기분이었다. 짐 정리를 하고 제법 깔끔하게 방을 정리하고 숙소를 떠났다. 이틀만큼 정이 든 숙소였다.
2.
테라로사커피공장 본점으로 갔다. 오전 11시 무렵이었는데, 차가 제법 있었다. 엄청난 규모에 놀랐다. 이 정도는 되어야 한 지역의 랜드마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대기 번호가 있었지만 앞으로는 고작 두 명 뿐이었고, 우리는 원하는 자리에 앉아 커피와 빵을 먹을 수 있었다. 꽤나 여유로웠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오늘은 좀 여유롭네.”라고 말했다. C와 K에게 핀잔을 들었다. ‘나 때문에 일정이 빡빡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사실 혼자 다닐 때는 아침 7시나 8시에 나오는 일이 다반사인 나에게는 이번 일정도 꽤나 여유롭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C와 K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번 여행은 오롯이 그들 덕에 즐거울 수 있었다.
3.
커피를 마시고 나와 서울로 향했다. 여행에 대한 미련을 더 갖지 말라는 듯, 비는 더 세차게 쏟아졌다. 나는 심심한 듯 계속 둘 모두에게 말을 걸었는데, 그 빗속에서 둘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한동안 많은 대화를 하지 않았는데, 다들 내가 “배고프다!”고 하는 말에 웃었다. 아까 커피를 마시며 빵을 먹을 때 “이렇게 먹으면 점심을 먹지 않아도 되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양평에 들러 순댓국을 먹었다.
4.
정말 집으로 갔다. C를 내려주고, K를 내려줬다. 둘이 내리니 차 안이 허전했다. 혼자도 자주 운전하던 차였는데, 그들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 줄지는 몰랐다. 여행에서 그들의 비중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여행의 최종 목적지인 집으로 왔다. 마리가 날 반긴다. 그들의 빈자리가 아쉽기도 했지만, 일상이 있기에 그런 일탈도 가능했을 것이다. 이렇게 글을 쓰며 다시 여행을 돌아본다. 이렇게 삶의 추억이 하나 더 쌓였다. 이렇게 쌓인 추억으로 앞으로 살 힘을 얻는다. 이제 다시 C와 K를 만나면 2020년 여름, 이날의 추억을 떠올리며 이야기꽃을 피울 것이다. 그것이 여행을 하는 목적 가운데 하나일 테니까.
어제 장을 봐온 음식으로 간단히 아침을 먹고 강문 해변으로 갔다. 어제보다 파도는 더 강해져 있었다. 아침부터 사람들은 부지런하게 해변으로 왔다. 나만 바다를 그리워하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묘한 동질감은 안도감으로 변했다. 우리는 K의 지휘아래 연신 사진을 찍었다. 이런, 저런 포즈를 남들이 보든 말든 취해가며 찍는 모습에서 약간은 어린 시절의 모습이 지나갔다. 20대에 만난 우리 일행은, 같이 여행을 옴으로서 20대의 어느 자락으로 돌아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강문과 안목 해변을 지나 우리는 속초로 향했다. 가는 길에 본 하늘에는 무지개 같은 해무리가 태양을 감싸고 있었다. 곧 비가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과 즐거운 여행에 대한 기대가 동시에 들었다.
강문해변의 높은 파도
2.
처음 간 곳은 속초의 동아서점. 1956년에 처음 문을 열었다는 서점은 이미 명물이 되어 있었다. 내가 서점을 간 것은 대한민국 도슨트 시리즈 1권 속초 편을 쓴 그곳의 사장님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약속은 하지 않았다. 약속을 함으로서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만나지 못하면 그것이 인연의 한계라 느꼈다. 서점은 세련됐고, 아늑했다. 서점 여러 곳에서 서점의 역사를 되새기게 하는 문구들을 볼 수 있었다. 운이 좋게 사장님을 만났다. 명함을 받고 정확한 직함이 매니저인 것을 알았다. 생각보다 많이 젊어 놀랐다. 난 50대가 넘는 중후한 서점 주인을 생각했다. 내 상상력의 한계를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잠깐의 대화였지만, 내가 책을 쓰는 것에도 여러 가지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그의 책에 사인을 받고 서점을 조금 더 둘러보고, 기념품을 보고 나왔다. 여행지에서 서점을 간다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서점이 한 지역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날이 온다면 얼마나 멋질까라는 생각을 했다. 한 지역을 소개하는 책들이 한 쪽을 차지하는 서점을 상상하면,그것이 상상이라도 신이 났다.
속초 동아서점내부의 책은 서점만의 분류 법으로 나누어 놨다고 했다.
3.
속초박물관으로 갔다. 발해역사관-실향민가옥-전시실로 이루어진 이곳은 속초라는 곳의 역사성을 보여주기 위한 노력이 보이는 곳이었다. 특히 실향민가옥을 재현해 놓은 것은 이 지역 현대사의 아픔을 고스라니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이야 사진 찍기 좋은 독특한 곳일 뿐일 수 있지만, 허름한 그 가옥에서의 고단한 삶이 약간은 느껴졌다. 고향이 가까워 오기도 했지만 군과 관련된 일을 하기 위해 이곳에 정착한 사람들 가운데 고향이 같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 유래가 됐다고 한다. 실향의 아픔, 먹고 살아야 하는 고단함을 한 눈에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단 구구한 설명에도 발해 역사관은 내용도, 있어야 할 이유도 모두 나를 설득하기에는 좀 부족했다. 날씨가 좋았다면 울산바위가 보였을 전망대는 매우 좋았다.
재현해 놓은 실향민 마을재현해 놓은 옛날 속초역과 나..
4.
서피비치라고 불리는 양양 하조대로 갔다. 여느 해변에는 사람이 없었는데 이곳만은 달랐다. 서핑을 하는 사람은 물론, 20대의 젊은 사람들을 주축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있었다. 파도가 강해 서핑 말고는 할 것이 없었음에도 사람이 많았다. 이국적으로 꾸며놓은 해변 때문일까. 날이 추운대도 이곳에선 그동안 열심히 만들었을 좋은 몸을 뽐내기 위한 사람들이 많았다. 나중에 찾아보니 이곳에서는 일종의 파티도 열린다고 한다. 젊음과 파티, 잘 꾸며 놓은 장소.. 사람들이 모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어느 덧 번잡함이 싫어질 나이가 된 우리 일행은 인증샷을 몇 장 찍는 것으로 만족하고 그곳을 도망치듯 벗어났다.
너도 나도 인증샷유난히 많던 사람들
5.
돌아오는 길에 박이추 커피를 갔다. 1세대 바리스타라고 하는 박이추 선생이 만든 커피가게라고 했다. 꽤 큰 규모라고 생각했지만, 사람이 많아 잠시 대기를 해야 했다. 커피와 케익이 모두 맛있었다. 그곳에서 조금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강릉에 돌아가 고래서점을 갔다. 사람들이 와서 편히 책을 읽을 수 있는 그런 서점이었다. 빵집을 겸하고 있었지만, 굳이 빵을 사지 않아도 책을 볼 수 있었고, 볼 수 있는 공간도 잘 마련되어 있었다. 이런 속초와 강릉, 모두 이런 서점들이 있으므로 나에겐 더욱 매력적인 도시로 자리매김했다.
6.
같이 장을 봐서 돌아와 술을 마셨다. 셋 모두 즐겨본다는 예능 프로그램을 다시 보기로 시청했다. 모두 좋아하기도 했지만, 같이 보니 더욱 즐거웠다. 나에겐 혼자 하는 즐거움도, 같이 하는 즐거움도 모두 필요했던 것 같다. 그리고 또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나와 C와 K는 꽤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즐겁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추억의 힘이라 생각했다. 추억은 미화되기 마련이라지만, 그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의 유대감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 생각을 하며, 얼굴에 팩을 하고 잠이 들었다(물론 중간에 땠다).
숙소에서 아침을 먹고 나왔다. 비가 지나갔지만, 바람이 남은 바다는 거칠었다. 바다는 하늘을 닮는다. 빛깔도, 모습도, 마음도. 오전의 운전은 C가했다. 덕분에 하늘을 닮은 바다를 마음 것 볼 수 있었다. 무엇이기에 바다는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일까? 저 거대한 물, 높은 파도는 왜 자꾸 그리운 것일까? 생명이 시작되었다는 그곳은, 결국 다시 돌아가야 할 곳이기 때문인 것일까? 아침부터 물음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물음은 근방 머릿속을 지나갔고, 금방 풍경만 남았다.
7번국도의 바다7번 국도의 바다. 하늘색과 바다색은 꼭 닮았다.
2.
울진봉평신라비(이하 봉평비)전시관에 갔다. 자원 봉사하는 전시해설사가 우리를 보고 놀란다. 그러면서 “사람이 잘 안 찾는 곳인데..”라고 말했다. 우리는 이곳을 찾은 이유를 구구하게 설명했지만, 내용은 간단했다. 봉평비를 보고 싶어서였다.
법흥왕 11년(524년)에 세워진 비석이니 이미 1,500년 가까이 된 비석이었다. 여기에 법흥왕은 냉수리비의 자기 아버지가 그랬듯, 모즉지 매금왕이라는 어색한 칭호로 등장한다. 매금왕. 광개토왕비와 충주고구려비에도 등장하는 단어 ‘매금’에 왕이 붙은 단어이다. 풀이하면 ‘마립간왕’이다. 그는 동생인 사부지 갈문왕 및 다른 사람들과 이곳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 듣고, 잘못한 사람들을 처벌하였으며, 이것을 비석으로 남겼다. 장100대, 장60대.. 처벌의 내용들이다. 죽임을 당한 사람은 없었다. 노인법(奴人法)이라는 법도 등장한다. ‘매금왕’이라는 독특한 칭호를 쓰던 법흥왕은 이보다 4년 전 율령, 즉 법을 만들어 발표했고, 신하들의 위계인 관등을 정리했다. 이 판결은 그러던 중 일어난 사건에 대한 것이었다.
법흥왕은 이곳을 와보기는 한 것일까? 이곳 사람들은 이 판결을 순순히 받아들였을까? 역시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법흥왕과 그의 신료들은 이 판결로 이 지역의 질서를 바로 잡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곳에 사건의 경위와 판결을 다룬, 그것도 판결에 참여한 모든 사람의 이름까지 넣은 비를 만들어 세웠을 것이다. 그리고 법흥왕은 4년 후인 528년 불교를 공인한다. 이후 그는 성스러운 법흥대왕(聖法興大王)으로 불린다. 기록이 없어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 지역의 반란 소식 같은 것은 찾을 수 없으니, 당시의 판결이 최소한 이 지역을 안정시키는 것에 도움은 되었을 것이다.
이곳에 사건이 일어나고, 그것이 수습되고, 보고 된 후, 사람들이 모여 판결하고, 판결이 집행되고, 비를 만들고 세우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장100대라는 큰 형벌을 당하다 죽는 사람도 혹 있었을지 모르겠다. 이 비는 그런 수많은 상상의 영역을 담고 있다. 한참을 이곳에 머물렀다.
1,500년이 넘은 봉평비봉평비의 판결에 모두가 만족했을까?
3.
강릉으로 갔다. K를 기다렸다. C와 K는 나와 같이 모두 동문이지만, 둘은 그리 친한 사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둘 모두 함께 나머지 일정을 같이 하는 것에 찬성했다. 둘 모두에게 고마웠다. 먼저 숙소에 짐을 풀었다. 그리고 K를 만나러갔다. K는 특유의 밝음으로 차 안의 분위기를 바꿨다. 차 안은 금방 소란스러워졌다. 해물탕을 먹으러 갔다. 주문진이었다. 해물탕과 낙지볶음을 배부르게 먹었다. 소화를 시키러 밖으로 나왔는데, 그제야 이곳이 드라마 ‘도깨비’의 촬영지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냥 지나갈까 했지만 경치가 좋았다. 우리도 여느 관광객들처럼 줄을 서서 사진을 찍었다. ‘도깨비’의 촬영지가 아니라도 그곳은 충분히 아름다운 곳이었다. 높은 파도가 가끔 사람을 놀라게도 했지만, 그것마저 풍경이 되어주었다.
도깨비 촬영지주문진 바다
4.
강릉 시내로 갔다. 정확히는 시장으로 갔다. 토요일의 시장은 관광객으로 가득했다. 몇몇 인기 있는 음식점은 이미 재료가 다 떨어졌다. 우리는 시장 구경을 했다. 우리 동네에 있는, 주민들이 이용하는 시장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여기저기 줄을 서고, 어느 곳에서는 호객도 했다. 시장의 번잡함은 항상 생기로 느껴져 기분을 즐겁게 한다. 그리고 이 시장에 풍기는 독특한 기름 냄새는 사람을 금방 허기지게 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시장과 거리를 걸었다. 이야기도 했다. 두 사람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희생된 잉어의 이야기가 담긴 월하 거리는 옛날의 전설보다는 오늘의 이야기를 더 만들어야 할 것 같았다. 그만큼 옛이야기보다 지금의 풍경이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그곳에서 기념품을 사고, 먹을 것을 사서 숙소로 들어왔다.
사람 가득 강릉시장월하거리에 있는 다리에서.기념품 가게
5.
숙소에서 같이 술을 마셨다. C와 K의 어색함은 쉽게 풀리지 않을 것 같았지만, 술과 이야기와 분위기는 금방 편하게 자리를 만들었다. 우리는 예정된 술보다 더 많은 술을 마시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더 오랜 시간을 보낸 후에야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