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바람 타는 섬

- 현기영, 1989, 창작과 비평사 -

 

 

제주는 행정구역상 하나의 도()이지만,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섬()이기도 하다. 남해바다 가운데 크게 자리 잡은 제주는 따뜻한 날씨에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갖고 있지만, 한반도에서 태평양으로 나가는 길목에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섬과 전략적 요충지, 이것이 제주의 특성과 운명을 정했을지도 모른다.

 

섬은 특별한 공간이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고립의 공간이며, 바로 그 때문에 강한 유대와 배타성을 갖고 있기도 하다. 제주 출신인 작가 현기영은 제주의 43 사건을 다룬 순이삼촌이란 소설로 유명해 졌고, 그것으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43에 대한 기억과 고민은 여전히 남았다. 바람 타는 섬1932년 벌어진 잠녀항일투쟁을 다루고 있기도 하지만, 43이 갖는 급진성과 공동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지금은 해녀라고 불리는 잠녀는 특별한 존재이다. 이들은 바다에서 해산물을 채취하며 살아간다. 남성들이 배를 타고 나가거나 농사를 짓거나 할 때, 여성들은 바다로 나갔던 것이다. 이들은 그들만의 규율을 갖는다. 마을에 따라 어장을 나누고, 채취시기를 정하고, 나이에 따라 일할 수 있는 바다를 나눴다. 이것이 마을의 법보다 앞서는 향약이었다. 이런 제주사회의 공동체성은 바다를 넘어 일상생활에서도 적용되었다. ‘잠녀항일투쟁’, 즉 여성이 중심이 되어 일어난 항일투쟁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다.

 

공동체성은 남성들에게도 나타난다. 시호와 호일은 무정부주의자, 레닌주의자로 그 성향이 달라 치열하게 말다툼(논쟁)을 벌이기도 하지만, 결국 큰 싸움이 닥치면 서로 연합해서 협동전선을 펴기로약속하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작고 고립된 세계는 그들 나름대로의 질서를 만들어 내고 그 과정에서 공동체성을 만들어 나간 것이다. 이것은 어려움을 겪을 때 그것을 극복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한편 제주의 지정학적 위치는 불행한 역사를 만들었다. 조금은 다른 이유지만, 몽골은 이곳에 말 목장을 만들었고, 많은 남성들은 여기에 인력을 동원해야 했다. 일제강점기부터 지금까지는 태평양으로 나가야 하는 길목이 불행을 만들었다. 지금도 제주에 남아있는 비행장의 흔적은 전략적 요충지제주에 남은 상처이다. 비교적 최근 해군기지 건설을 놓고 강정마을에서 갈등이 일어난 것도 전략적 요충지 제주라는 특성 때문이다.

 

제주가 섬이라는 것은 그 비극을 한 층 더한다. 도망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숨을 곳이란 한라산과, 화산지형이 만들어 낸 크고 작은 굴 뿐이었다. 고립된 공동체의 비극은 그 뿐만이 아니다. 이웃의 사정을 너무 잘 알고 있으면서, 서로가 서로를 적대하고 의심해야 하는 시기가 올 때, 그때가 비극의 정점이다. 바람 부는 섬에서는 공동체의 힘이 느껴지지만 순이 삼촌은 비극으로 끝날 수밖에 없던 것은 제주가 갖고 있는 운명적 비극일 수도 있다.

 

공동체성과 개방성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이 둘은 공존하기 어려운 개념이다(불가능하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제주뿐만 아니라 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시절의 마을공동체는 대개 매우 강고하고, 조직력이 강했으며, 자신만의 규율과 규칙을 갖고 있었고(소위 향약), 폐쇄적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공동체를 유지하는 것에는 능했지만, 그것을 확장하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아니 할 생각도 없었다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한국은 거대한 섬이다. 북으로는 휴전선이 있고, 나머지는 3면은 바다로 둘러싸여있다. 그런 우리에게 제주가 갖는 특성과 운명을 비단 제주의 것만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지금 것 인류가 그래왔듯, 우리 역사가 그래왔듯, 그 운명에서 배워, 운명을 넘어 새로운 운명을 개척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바람 타는 섬1930년대와 1950년대 제주의 운명을 넘어 앞으로의 미래를 이야기 하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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