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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9.14 서평 : 『수축사회』(홍성국, 2018, 메디치미디어)

최근에 많이 듣는 소리가 있다. 요새 젊은이들은 자기 부모들보다 못 사는 최초의 세대가 될 것이라는 말이다. 경제는 언젠가부터 항상 어렵다. 경제성장률은 점점 줄어들어서 이제 2%정도에 머물고 있다. 호황이라는 이야기를 들어본 기억은 초등학교 무렵쯤이었던 것 같다. 가끔 대기업에서 엄청난 영업이익을 내서 성과급 잔치를 했다는 뉴스를 보지만 남의 이야기다. 20~30대는 취업에 목숨을 건다. 안정된 직장인 공무원, 교사가 가장 인기 직종이 된 지 오래다. 자살률은 OECD에서 항상 최상위권을 유지한다. 90년대 이후 정권은 계속 바뀌었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까지 비교적 보수적인 정권과 진보적인 정권이 번갈아 들어섰다. 하지만 그 어느 쪽도 경제문제를 속 시원하게 해결하지 못했다. 이쯤 되면 새로운 문제제기와 해답이 필요하다. 수축사회의 저자 홍성국은 이 원인을 ‘수축사회’에서 찾는다.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장경덕 외 옮김, 2014, 글항아리)에서 인류 역사에서 일어난 이례적인 성장이 이제 끝났음을 지적했다. 저자 역시 지난 500년의 성장은 이제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인구가 줄면 수요가 줄고, 수요가 줄면 기업의 생산량도 같이 줄어야 하며, 일자리는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은 이런 추세를 가중 시킬 수도 있다. 소위 스마트 팩토리는 효율성을 극대화 하면서도, 인력을 사용은 최소화한다.. 인류 전체의 성장세가 둔화되면서 지금까지 벌어졌던 플러스섬게임의 시대는 끝나고 제로섬게임의 시대가 왔다. 플러스섬게임 시대에는 승자는 많은 것을, 패자도 약간의 이익을 가져갈 수 있었지만, 제로섬게임의 시대에는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간다. 국가, 기업, 개인 모두 극단적인 이기주의 체제로 전환할 수밖에 없다. 저자는 트럼프의 미국우선주의 역시 수축사회 진입의 신호로 본다. 적과 아군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고, 약간 남아 있는 팽창지역에 모든 것이 몰리는 집중화 현상도 일어난다. 한국의 강남, 미국의 캘리포니아 등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러니 인간은 불안에 하고 우울증 등 각종 정신질환에 시달린다.

 

미국, 유럽, 중국 등은 이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양적완화, 저금리, 적자를 감수한 경기부양책 등을 사용했다. 팽창사회였으면 충분히 효과를 봤을 이런 정책은 기축통화국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에서는 큰 효과가 없었다. 아직도 경제성장률이 높은 후발개도국은 사회적 신뢰, 도덕적 가치의 붕괴 등 사회적 자본의 부족으로 한계에 부딪치고 있다. 중국과 인도 등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많은 인구는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기도 하지만, 사회 갈등의 원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마냥 좋다고만 할 수도 없다. 요컨대 전세계가 수축사회에 접어든 것이다. 다 같이 성장할 때에는 중산층도 같이 성장할 수 있었지만, 성장이 멈추면 자본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부가 집중된다. 양극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한국도 피해갈 수 없다. 요새 젊은이들에게 유행하는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 즉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는 행동)은 계층 이동이라는 희망의 사다리가 사라진 시대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세계는 수축사회로 접어들었지만, 팽창사회에 살았던 사람들의 해법은 여전히 팽창사회적임을 저자는 지적하며, 그것으로는 수축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사실 저자는 수축사회의 충격은 있을 수밖에 없고, 가능하다면 이것을 연착륙 시키는 것이 방법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방법을 제시한다. 원칙적이며 투명한 사회 넓은 시야를 갖고 멀리 보며, 미래에 집중 선택과 집중을 통한 창의성 개발 반대 트렌드를 읽고, 독점을 피하는 등 남다른 무기 보유 새로운 조직문화와 미래형 리더의 발굴이다. 언 듯 보면 너무나 당연한 교과서적인 해법이지만 항상 답은 교과서 안에 있었다. 문제는 교과서대로 살지 않는 사람들의 문제일 뿐.

 

세계가 저성장 구조로 들어간 것은 확실해 보인다. 저금리, 저성장, 저물가를 뉴노멀(New normal), 즉 새로운 경제적 표준이라고 이야기하게 된 것은 이미 2008년의 일이다(단어 자체는 2000년경에 등장했다). 빚으로 만들어진 경제에서 아무도 고금리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2008년 금융위기는 저자에 의하면 수축사회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고, 그것이 아니더라도 서브프라임모기지라는 빚잔치의 위험함을 몸소 보여줌과 동시에, 금리 인상이 빚으로 세워진 금융(더 나아가 경제)에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도 사회의 권력을 잡고 있는 50대 이상(더 넓게 잡으면 40대 이상)은 팽창사회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게 평생 살아왔기 때문이다. 한국의 부동산 불패 신화도 여기서 기인한다(물론 저자는 서울 등 특정 지역의 집중화로 인한 집값 상승은 한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우리는 빨리 이 신화에서 깨어나 새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문득 어제 읽은 90년생이 온다(임홍택, 2018, 웨일북)의 90년(대)생은 태어나서 기억이 생긴 그 이후부터 단 한 번도 팽창사회에 살아보지 못한 세대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80()생과도 다른 또 다른 문화를 갖게 된 것은 아닐까. 팽창사회의 해법으로는 90년생은 물론 00년생, 10년생에게도 희망을 주는 것에 실패할지도 모른다. 사회의 패러다임은 가랑비에 옷이 젖듯, 낮의 길이가 계절에 따라 알 수 없을 만큼 조금씩 바뀌듯 바뀌어 바뀌는 그 순간에는 알 수 없을지 모르나, 알게 된 그 순간에는 이미 많이 늦어서 감기에 걸릴 수도, 너무 어두워져 있을 수도 있다. 새로운 시대를 모두가 준비할 필요도 없고, 젊은이들에게는 특히 그럴 여유가 없다. 누구 말대로 세상을 망칠 기회조차 갖지 못한 것이 지금의 젊은이들이다. 이들이 살아갈 새로운 세상에 대한 준비야 말로 기성세대의 책무일지도 모른다.

Posted by beatles for s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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