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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전달자

Imagine 2017. 10. 31. 11:15


(※생각나는데로 쓴거라 중언부언 합니다. 많은 의견 부탁드립니다.)


문화원이라는 다소 생소한 공간에서 일한지도 벌써 만으로 4년 7개월이 지났다. 짧다고만은 할 수 없는 시간이다. 그간 느낀 점을, 다른 원고가 잘 안 써지는 김에 정리해보고자 한다.


전에 있던 대학 공간에선 만나는 사람들이 대부분 학자였다. 즉 역사를 생산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새로운 사료를 발굴하고, 기존 사료를 분석하며, 기존의 논의를 보완하거나 수정한다. 이 과정은 매우 힘든 과정이다. 사료는 다양한 언어와 문자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직접 보고 읽는 것은 그 언어나 문자에 대한 별도의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존 연구를 분석하는 일도 쉬운 것은 아니다. 기존의 연구는 연구가 이루어진 시대적 맥락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해방 이후 한동안 한국 역사학계의 과제가 ‘식민사학 극복’이었으며, 반공의 시대에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은 이야기 될 수 없었다. 이런 맥락을 파악한 후에야 기존 연구를 이해할 수 있다. 외국어 역시 중요하다. 한국사는 – 비록 연구자 숫자는 적어도 – 한국 사람만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 일본, 중국학자들도 한국사 연구를 진행했고 – 맥락은 역시 각각 다르지만 – 거의 그들의 언어로 논문이 쓰였다.


학교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저 어려운 일들을 할 수 있게 교육 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나는 한국의 역사 생산자들이 상당히 열심히 공부할 뿐만 아니라 수준도 높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화원에서 일하며 느낀 것은 대중들이 원하는 사람들은 전문적인 역사 생산자가 아니라, 역사를 쉽게 전달해 줄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무식하고 교양이 없어서가 아니다. 이미 자신의 생활로 바쁜 사람들에게 전문적인 역사 생산자들이 써내는 논문 형태의 글은 접근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이해하기도 어렵다(심지어 같은 학자들 사이에서도 어떤 논문은 어렵다고 느끼는 경우는 매우 많지 않은가?). 불행이도 역사학계 안에 그런 학자들이 있는가? 그러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현재 역사학계에는 잘 팔리는 대중 역사서를 쓰는 베스트셀러 작가도 나오지 않고, 슈퍼스타 강연자도 없다.


물론 역사가 모두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스타 강연자가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좋은 역사학 논문들이 생산되는 토양이 없다면 저런 ‘스타’는 무의미 하다. 문제는 현재 그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은 별로 전문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며, 심지어 사기꾼 같은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시스템이다. 역사 생산자로 불리는 역사학자들은 대부분 같은 분야에서 직업을 찾는다. 이 시스템에서 가장 좋은 직업은 대부분의 경우 4년제 대학의 정규직 교수이다. 국사편찬위원회, 동북아역사재단과 같은 국가 기관이 그 다음쯤 될 듯하다. 그리고 그 밑에는 대학연구소 등이 있을 것이다. 아무튼. 가장 좋은 직업이라는 4년제 대학에 취업을 해도 처음에는 매년 평가를 받아야 한다. 일 년에 몇 편 이상 논문 제출과 같은 것이 그것이다. 거기에 기관에 따라 학생들 취업에도 일정하게 개입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역사 생산자이니 역사 논문을 생산해 내는 것은 의무일지도 모르지만, 일정한 급 이상의 학술지에 일정한 수 이상의 논문을 게재하는 것은 다른 활동을 제약할 수밖에 없다. 교수는 당연하게도 교육도 맡고 있으니 수업도 해야 하고, 수업준비도 해야 하고, 학생지도도 해야 하니 바쁠 수밖에 없고. 이런 상황에서 좋은 대중 역사서를 쓰는 역사 생산자는 나오기 어렵다.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학계의 분위기도 여기에 한 몫을 한다. 학계에서는 좋은 논문을 생산해 내는 사람들만 학자로서 인정받는다. 이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좋은 생산자가 되는 방법밖에 없다. 좋은 논문 생산에 전념해야 하는 구조에서 좋은 대중서 쓰기를 시도하는 사람이 나오는 것은 쉽지 않다. 거기에 학계 분위기마저 생산자만 인정하니, 다른 것에 신경 쓰기는 더 어렵다.


학계에서도 좋은 전달자를 키워내야 한다. 현재 ‘사이비 역사학’을 둔 상고사 논쟁이 뜨겁다. 이런 ‘사이비’에 대한 학계의 반발은 당연하다. 하지만 ‘사이비’는 ‘정통’이 있어야 가능한데 과연 ‘정통 역사학’이란 것이 존재하는가?(이에 대해서는 역사문제연구소 김성보 소장의 〈국정교과서와 상고사 갈등, 같고도 다른 전선〉 참조) 소위 사이비 역사학이 문제가 된 것은 이들이 대중적으로 지지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주장에는 조금도 찬성할 수 없지만, 그와 별계로 기존 역사학계가 대중화에 얼마나 힘을 썼는가는 비판 받아야 마땅하다. 이제라도 역사를 쉽게 전달할 수 있는 전달자가 있어야 한다.


문화원에서 일하다보면 대중들의 역사에 대한 관심에 놀라곤 한다. 심지어 매우 높은 수준의 지식을 갖고 있는 경우도 있다. 다만 그들이 접하는 책들은 역사 생산자가 쓴 것이 아니라 소위 사이비 역사학자들이 쓴 책인 경우가 많다. 더 물어보면 다른 책들은 읽기도 어렵고 재미도 없다고 한다. 학문으로서의 역사학이 재미있을 필요는 없지만, 역사를 소비하는 대중들에게도 학문의 언어로만 전달해야할까? 또한 대중 강연을 종종하곤 하는데, 이런 대중 강연 자리도 많지 않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은 이야기 한다. 꼭 크게 많은 사람을 모을 필요는 없다. 10명 20명이라도 모이면 이야기 할 수 있는 자리도 필요한데, 우리에겐 아직 그런 저변도 없다. 이런 것들을 해주는 것이 나는 전달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학계에서 전달자를 키워 내고, 그들을 생산자만큼 인정해준다면? 대학원에서 석사과정 이상에서 전달자의 역할을 이야기해주고, 전달자를 키워내는 과정이 있다면 어떨까? 학계의 목소리와 연구 성과를 쉽게 전달해주는 사람을 학계에서 전문적으로 키워낸다면 어떨까? 사실 가장 좋은 방법은 생산자가 그의 언어로 대중 글쓰기를 하는 것이다. 그런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런 조건을 만드는 것과 전달자의 육성은 별개로 진행될 수도 있다.


대학은 계속 줄고, 당연히 가장 선호하는 일자리인 교수직도 계속 줄어들 것이다. 지금 젊은 세대에게 교수, 국책연구소, 대학연구소만을 기대하고 역사학을 전공하라고 할 수는 없다. 학문으로서의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더 다양할 길을 찾는 지혜가 지금 역사학계에 필요하지 않을까?



덧. 사실 역가가가 생산만 하면 되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다만 그렇게 생산만 하고 전달을 하지 않아 놓고, 대중들이 우리 결과물을 몰라준다거나, 대중이 무식하네 뭐네 같은 소리를 하지 않았으면 한다. 천문학은 어려운 학문이지만 미국에선 '코스모스' 같은 대중 다큐도 만들어 방영하지 않는가?


Posted by beatles for s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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