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문제로 시끄럽다. 여야 갈등은 물론 여당 내 갈등도 심화되고 있다.
문제는 세종시를 원안대로 처리하느냐, 아니냐이다.

원안추진의 핵심내용은 행정부처의 이전이다.
참여정부는 국토균형발전을 목표로 행정수도 이전을 계획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관습법’의 논리로 행정수도 이전은 좌절되었고,
그 대안으로 만들어진 것이 ‘행정복합도시(행복도시)’이다.

수정추진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행복도시 세종시는 행정 비효율을 초래할 것이며,
자급기능이 부족하기 때문에 유령도시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편으로는 세종시가 참여정부에서 충청권 표를 얻기 위한 정책이었고,
때문에 시작부터 잘못되었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이에 대해서는 후술).

일단 저 논의에서 빠져나와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현재 서울은 많은 특권을 가진 도시이다.
한국에서 가장 비싼 땅은 서울에 있고,
고위공무원과 부자들의 대부분도 서울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즉 공간적으로도 계급적으로도 서울은 이미 하나의 특권이다.
(물론 서울 안에서도 강남, 강북 등으로 나뉘는 등 복잡한 양상을 띠기는 한다)

현재 뿐만 아니라 서울은 계속 특권의 도시였다. 최근에 읽은 한 책의 내용을 인용해보자.

그러나 조선시대 이 땅에서는 서울 외에 성장의 ‘증거’를 확보한 도시를 찾아볼 수 없다. 조선 후기에 ‘소도시’로 성장할 가능성을 포구나 장시가 없지는 않았지만, 옛 도시는 평양이든 개성이든 대체로 정체되어 있었다. 유독 서울만이 천도 후의 급팽창에 이어 17세기 이후 새로운 도시적 활기를 보여주었을 뿐이다. (중략) 지방도시는 사실상 자체의 배후지를 갖지 못한 채, 서울의 촉수로서만 기능했다. 그리하여 서울은 조선 후기의 생산력 발전의 성과를 독점적으로 향유했다. 19세기 경화사족(京華士族)과 왈짜패들이 흥청망청 근대적 소비문화의 싹을 틔우고 있던 바로 그 시점에, 민란의 시대도 함께 열렸다(전우용 <<서울은 깊다>>, 돌베게, 27-28쪽).

‘서울은 조선 후기의 생산력 발전의 성과를 독점적으로 향유했다’라는 말에서
‘조선 후기’를 ‘산업화에 따른’으로 고친다면
이것이 조선 후기를 이야기 하는 것인지 현재를 이야기 하는 것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다.

이렇듯 서울은 오랜 기간 특권을 향유한 도시였다.
그리고 세종시 문제의 핵심은 이 특권을 나누자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쉽지가 않다.
앞서 언급했듯 서울은 공간적, 계급적으로 이미 특권의 도시이다.
이것은 계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울에 있어야 하며,
서울의 특권이 유지 되어야 계급적 특권도 유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서울에는 명문고, 명문 입시학원 등은 물론 명문 초등학교까지 밀집되어 있다.
한국에서 계급적 특권은
명문고 - 명문대 - 대기업(혹은 전문직)으로 이어져야 유지가 가능한데,
명문 초,중,고와 학원이 몰려있는 서울은 공간적으로 특권의 도시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많은 서울 주민과 수도권 주민은
서울 내에서도 특히 특화된 공간(8학군으로 대표되는)으로의 편입을 욕망한다.
이 예는 단지 교육에 국한된 것이지만 정치, 경제 등 모든 면에서
강남으로 대표되는 서울로의 진출은 성공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에서 일종의 특권계급인 공무원(고위 공무원)에게
특권의 땅을 떠나라고 한다면, 반발이 있음은 당연할 것이다.
또한 특권으로의 편입을 욕망하는 많은 서울 및 수도권 시민들 역시,
반발까지는 아니더라고 탐탁치 않아할 것이 명약관화하다.

세종시 수정론도 이러한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수정론의 내용은 간단하다.
‘서울에서는 하나도 못 내려간다. 대신 다른 것을 해주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서울대 이전 안도 서울대의 정원을 늘려 서울의 특권을 침해하지 않는 것이었고,
지금 나오는 과학비지니스벨트 역시 서울에는 해당 없는 이야기였다.
기업의 유치도 서울의 대기업이 내려간다는 이야기 보다는
다른 지방도시로 갈 기업이 세종시로 옮긴다는 이야기가 많았다(삼성전기 처럼).

서울을 특권의 도시로 만들고 그것을 독점하며 사는 특권 계급은
그 특권의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서울시장 출신이었고, 서울의 정서를 누구보다 잘 아는,
그리고 그러한 정서를 자극해 서울과 수도권의 지지에 힘입어 당선 된,
이명박 대통령이 이것을 모를리 없다.
아마 지방의 반대가 있을지언정, 수도권은 자신을 지지해 줄 것으로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대통령보다도 인기가 많으며 지지층도 견고한
박근혜 전대표와 야당의 강력한 반발,
그리고 세종시 문제의 대리자로 내세웠던 정운찬 총리의 예상외의 부진으로,
수도권 여론마저 얻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그래도 수정추진 여론은 ‘생각보다’ 높다).

더욱이 중요한 문제는 대통령이 뚜렷한 비전이 없다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서울의 특권과는 조금은 다른 이야기도 포함)
수정추진론자들은 세종시가 충청권 표를 얻으려고 추진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모든 정치인의 정책은 표를 얻기 위한 정책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747, 반값 등록금 역시 표를 위한 정책이었다.
정치인이 표를 얻기 위한 정책을 내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그것이 얼마나 ‘공익과 일치하느냐’이다.

나는 정치학을 배운 적이 없어 잘 모르지만 가장 좋은 정책이란
‘공익과 일치하면서 국민 개인의 이익(혹은 욕망)을 동시에 만족시켜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공익의 개념은 누구나 다르기 때문에 이것을 갖고 옳다 그르다 하긴 어렵다.
참여정부에서 세종시를 ‘공익과 일치하고 표도 얻을 수 있다’고 추진했다면,
이번 정부에서는 반대로 ‘공익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문제는 세종시를 ‘공익과 일치하고 표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공익과 표를 동시에 추구하겠다는 전략이지만,
‘공익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도 세종시 원안 추진을 이야기한 것은
명백한 ‘국민에 대한 기만’ 즉 거짓말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에 내놓은 대안은 ‘서울의 특권은 나눌 수 없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과연 서울의 특권(경제, 교육, 정치, 행정) 중 하나라도 지방에 이전하지 않고서
국토 균형발전을 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대기업과, 상위권 대학, 정치기구(국회), 행정기구가 서울에 있는 한,
기업 몇 개 내려가고, 의료 단지 몇 개 지방에 만든다고 해서
국토 균형발전이 될 리 만무하다.

즉 가장 큰 문제는 현 대통령과 집권여당은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문제의식도 희미하고,
대안도 없고, 의지도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이다.
스스로가 공간적 계급적으로 특권층에 속하거나, 그 특권과 이해관계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있는가?
솔직히 비판은 했지만, 내가 뛰어난 행정가도 아니고, 정치인도 아니고,
도시공학이나 행정학을 전공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구체적 대안을 제시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추상적이라도 한 가지 원칙은 제시할 수 있을 듯하다.

서울의 특권을 나누는 쪽으로 추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서울이 독점하는 경제적, 교육적, 행정적 특권을
지방에 나누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종시 원안에는 행정부처 이전만이 제시되어 있지만,
대기업도, 교육기관도 지방으로 많이 이전해야 한다.
이것은 단지 세종시만이 아니라 다른 지방 혁신도시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특권층만이 아닌 특권을 욕망하는 서울시민들을 설득해야한다.
요원한 일인 것 같기도 하다.
사실 특권층으로의 편입을 욕망하는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대통령을 만들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현 대통령의 실정으로
특권층으로의 편입의 욕망이 얼마나 힘든지도 알게 된 듯하다.

생각해보면 내가 특권층으로 편입되는 것보다,
우리 모두가 조금 더 잘 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다.

내가, 내 자녀가 명문대를 나와서 대기업을 갈 가능성과
그저 그런 대학을 나와 중소기업에 취업할 가능성을 생각해보라!

그렇다면 명문대를 나오면 대박나는 시스템과,
그저그런 지방대를 나와도 그럭저럭 먹고 살 수 있는 시스템 중
어느 것이 효과적인지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글이 다소 산만해졌지만
결국 세종시 문제는 서울의 특권에 관한 것이며,
그 특권에 편입하기 위한 욕망의 문제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해결의 방안은 결국 우리 자신에게 있다.
Posted by beatles for s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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