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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9.22 〈아버지의 깃발〉과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어제는 할 일이 많음에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서 그냥 가만히 있다가,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두 편의 영화를 봤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아버지의 깃발이오지마에서 온 편지였다. 두 편 모두 이오지마 전투를 다룬 영화이다.

 

아버지의 깃발은 그 유명한 이오지마 전투 후 성조기를 세우는 사진의 진실을 다룬다. 원래 첫 번째 세워진 깃발이 있었지만, 해군장관이 그 깃발을 요구하자 대대장은 그 깃발을 대대 금고에 반납해 버린다. 저 유명한 사진은 그 이후 두 번째 깃발을 세울 때 찍은 사진이다. 지리멸렬한 태평양 전투에 승리의 상징이 된 두 번째 사진의 주인공들은 영웅 대접을 받으며 귀국하고, 전쟁 채권을 파는 데 동원된다.

 

나중에 밝혀진 것이지만 귀국한 영웅중 한명인 존 닥 브레들리는 첫 번째 깃발을 세운 사람 중 하나였고, 의무병으로서 수많은 생명을 구한 진짜 영웅이었다. 그는 채권 판매의 역할을 다하고 전역하여 장의사로 활동하다 눈을 감는다. 평범한 삶 같지만 그는 평생 전투의 기억, 귀국 후 자신이 했던 기만적인 행동 사실 그는 충분히 영웅 대접을 받을 만 했음에도 - 때문에 PTSD에 시달렸다.

 

인디언인 아이라 헤이즈는 인종차별에 시달리면서도 전투에서는 누구보다 성실하고 용맹한 군인이었다. 그는 두 번째 깃발을 세우는 것에 참석하였지만, 자신이 그 중 하나였다는 것을 밝히기 싫어했다. 하지만 래니 개그넌이 이야기 하는 바람에 귀국하게 되고, 영웅 대접을 받는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받는 영웅대접과 하는 행동이 얼마나 기만적인지를 잘 알고 있었고, 결국 술에 빠져 살다 1955년 사망한다.

 

래니 개그넌은 군대에서 인정받지 못하던 인물이었다. 전투에도 적합하지 않은 인물이어서 전령으로 활동했는데, 두 번째 깃발을 세우는 것에 참여하여 일약 영웅이 된다. 그리고 셋 중 이를 즐기는 유일한 인물이다.

 

이 영화는 이 셋의 행동, 고민과 함께 전투 장면을 보여주면서, 그리고 그곳에서 개죽음당하는 젊은 병사들을 보여주면서 저 셋의 행동뿐만 아니라 전쟁 자체가 얼마나 기만적이고 위선적인지를 보여준다.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는 일본군의 시각에서 전투를 그린다. 이오지마는 일본 본토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방어선이었다. 당연히 그곳을 사수해야했지만, 일본 정부는 이곳에 대한 지원을 끊었다. 영화는 쿠리바야시 타다미치 중장이 이곳의 책임자로 오면서 벌어지는 일을 보여준다.

 

영화에서는 일본군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병사들에 대한 구타 및 가혹행위, 임기응변 없이 교범에만 충실한 장교들, 후퇴하라는 상관의 명령도 듣지 않고 자살을 택하는 사람들, 육군과 해군과의 갈등, 정신력에만 의지하는 제세 등은 일본이 패배 할 수밖에 없던 이유들이 수도 없이 나열된다. 이 영화는 일본에서 꽤 인기를 끌었지만, 일본인들은 내용에는 불편해 했다고 한다.

 

영화는 쿠리바야시 타다미치 중장이 이오지마로 부임하면서 시작한다. 미국에서 유학을 한 그는 일본군 내에 몇 안 되는 합리주의자이기도 하다. 그는 미군이 상륙 막강한 화력으로 해안을 폭격할 것을 예측하고, 진지를 내륙으로 옮긴다. 그리고 산에 거대한 터널을 뚫어서 폭격과 전투에 대비한다. 이 과정은 모두 교범에 없던 것이기에 하는 것마다 다른 장교들의 반대에 부딪힌다. 그나마 상관이었던 쿠리바야시 타다미치는 지위로 이를 밀어붙이지만 본토를 지키기 위해 전력을 모아야 해서 이오지마를 더 이상 지원할 수 없다는 일본 정부의 말은 받아 들여야 했다.

 

그가 선택한 것은 모두 죽더라도 미군의 피해를 최대로 늘려 본토 공격을 부담스럽게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러니 초기에 군인들의 피해를 최소화 하고, 자신들이 구축해 놓은 진지까지 유도해서 최대한 많은 미군을 죽게 만들어야 했다. 산에 터널을 파고, 해안에서 군대를 물린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압도적 물량에 일본군은 밀리기 시작한다. 쿠리바야시 타다미치는 위치를 사수 할 수 없으면 후퇴하라고 하지만, 그것을 수치로 여겼던 일본군 장교들은 그 명령을 거부하고 자살한다. 나머지 병사들도 따라야했다. 이렇게 그의 작전은 실패로 끝났다.

 

이 역시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를 보여준다. 이 영화의 관찰자에 해당하는 사이고 노보루는 평범한 20대 젊은이이고, 얼마 전 결혼을 하여 아이를 가졌다. 그런 그의 가정은 여러 사람들의 축복속에 배달되어 온 입영 통지서로 엉망이 된다. 쿠리바야시 타다미치 중장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에서 생활해 본 그는 미국이 얼마나 압도적인 전력을 갖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으며, 미국과의 전쟁을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정치인들이 결정한 전쟁에 이들의 일상은 파괴되고 전장으로 내몰린다. 일부는 원치 않는 자살을 해야 했다.

 

둘을 다른 듯 같다. 아버지의 깃발은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는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 이다. 이 점에서 두 영화는 다르다. 하지만 모두 전쟁의 참상을 전한다는 점에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세상에 정당한 전쟁이라는 것은 없다. 모든 전쟁은 범죄를 내포하고 있다. 인류사를 보면 수렵채집 사회가 농경사회보다 압도적으로 길다. 전쟁은 고작 그 농경사회의 산물이다. 대규모 전쟁은 더욱 그렇다. 그리고 그 대규모전쟁이 몇몇 정책입안자들의 오판과 이익을 위해서 벌어졌다는 것은 역사의 상식이기도 하고 비극이기도 하다.

 

클린트 이스우드는 밀리언달러 베이비, 그랜토리노, 설리 : 허드슨강의 기적등의 영화를 통해 보수주의자가 가진 인류애적 시선이 무엇인가를 확실히 보여줬다. 그리고 그가 그린 전쟁의 모습이 참상이었다는 것은 적어도 인류애라는 측면에서 이념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 시켜주기도 한다.

Posted by beatles for s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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