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러진 화살이 이슈다. 얼마 전에 있었던 김명호 교수의 '석궁테러'의 판결을 갖고 사법부의 부조리를 지적하는 내용으로 알고 있다. 곧 볼 예정이다. 그런데 이러한 이슈 가운데 하나는 영화가 '진실' 혹은 '사실'이냐는 논쟁이다. 그리고 감히 영화도 보지 않은 상황에서도 결론을 내린다면, 영화는 그냥 영화일 뿐이다.
아주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재판정의 당시 모습을 그대로 카메라에 담아도, 그것을 편집하는 순간 거기에는 편집자의 의도가 개입된다. 그런데 이 영화는 감독이 판결문을 보면서 벌써 감독의 주관이 들어갔다. 거기에 대본을 받아본 연기자들은 아무리 감독과 협의를 한다해도 또 연기자 나름대로 대본에 대한 해석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심지어 재판 기록을 꼼꼼히 살펴본 홍성수 변호사의 영화평에 따르면 영화에는 '피고인측에 불리한 내용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영화는 진실을 그대로 담을 수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이 영화가 가치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영화라는 장르를 통해 우리는 얼마든지 세상을 비꼬고 고발하고, 감싸 안을 수 있다. 영화 부러진 화살도 그런 영화로서 지금까지의 대한민국 사법부에 관한 비판을 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위험한 것은 영화를 사실로 믿자는 주장이다.
대한민국 사법부가 그렇게 믿지 못할 곳인가? 잘 생각해보면 그렇지도 않다. 바로 얼마전 정연주 전KBS사장과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의 무죄를 선고한 곳도 대한민국의 사법부이다. 이때 소위 '진보진영'에서는 정의가 승리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정봉주 전의원이 구속되었을 때는 정의가 죽었다고 말했다. 같은 사법부의(심지어는 같은 판사의 판결인데도), 얼마의 격차를 두지 않은 판결인데도 정의는 '우리편'에게 유리하냐? 그렇지 않냐를 갖고 정의는 살았다 죽었다 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진영논리가 갖는 무서움이다.
이 진영논리는 최근 여러군데에서 나타난다. 예를 들면 곽노현 교육감에 대한 '진보'진영의 자세이다. 곽 교육감이 준 돈이 대가성이 있던 없던, 그의 캠프 관계자가 몰래 금품을 주기로 협의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 책임은 곽 교육감에게 전혀 없는가? 결국 곽 교육감은 박명기교수에게 돈을 건냈다. 본인은 대가성이 없다고 했지만, 캠프 내의 합의가 있었고, 돈이 오갔다. 누가 봐도 의심을 거둘 수 없다. 곽 교육감이 정말 몰랐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에게 책임은 없는 것일까?
우리는 지금 가카 주변의 엄청난 비리를 접하고 있다. 그리고 그 책임을 가카에게 돌린다. 가카가 그들의 수장이기 때문이다. 곽 교육감을 감싸는 논리대로라면 가카가 측근들의 비리를 몰랐다면, 가카는 책임질 필요가 없다. 곽교육감이 자기 캠프에서 일어난 합이에 책임질 필요가 없듯. 남이하면 불륜이고 자기가 하면 로맨스가 되는 것, 이것이 진영논리가 아니면 무엇인가?
혹자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이렇게라도 해서 세상을 바꿔야 한다.' 난 이렇게 반박하겠다. '괴물과 싸울 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괴물을 닮아가는 것'이라고. 측근 비리도 수장과는 관련이 없다고 감싸고, 사법부의 판결의 '정의'와 '불의'를 마음데로 판단하고, 영화를 사실로 믿으라고 주장해서 이겼다 치자. 우리가 이기고자 하는 괴물과 우리가 다를 것이 무엇인가? 이렇게 권력을 잡아봐야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우리가 곧 그들과 갖게 됐으므로.
내가 '우리'라고 했듯 나도 그 괴물에 반대하는 쪽에 있다. 하지만 괴물을 이기이 위해서 무엇이라도 해야한다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우리는 괴물을 이기는 방법부터 고민해야한다. 아니 그렇지 못하다면, 꼭 이겨야 겠다면, 최소한 내부의 비판에는 관대해야 한다. 당장 이기기에 급급해서 이기는데 당장 장애가 된다고 모든 비판을 적으로 간주한다면 그것은 그냥 괴물이 되는 지름길일 뿐이다.
그렇지 않다고? 지금 분명 소위 '진보'진영에선 그러고 있다. 진중권이 꼼수를 깐다고 진중권을 비난한다. 진중권의 이야기 중에 받아들일 것이 하나도 없는가? 꼼수의 내용을 하나의 견해나 주장 정도로 받아들이자는 의견이 그렇게 잘못된 말인가? 정봉주 전의원 구속에 대한 사법부 판결이 그리 잘못된 판결만은 아니라고 말하면 진중권은 '진보'의 적이 되는가?(그의 문투가 비난 받을지언정)
싸워서 이기자. 제발. 그러나 정당하게 싸워 정당하게 이기자. 세상은 그런 후에나 바뀔 수 있다.
아주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재판정의 당시 모습을 그대로 카메라에 담아도, 그것을 편집하는 순간 거기에는 편집자의 의도가 개입된다. 그런데 이 영화는 감독이 판결문을 보면서 벌써 감독의 주관이 들어갔다. 거기에 대본을 받아본 연기자들은 아무리 감독과 협의를 한다해도 또 연기자 나름대로 대본에 대한 해석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심지어 재판 기록을 꼼꼼히 살펴본 홍성수 변호사의 영화평에 따르면 영화에는 '피고인측에 불리한 내용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영화는 진실을 그대로 담을 수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이 영화가 가치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영화라는 장르를 통해 우리는 얼마든지 세상을 비꼬고 고발하고, 감싸 안을 수 있다. 영화 부러진 화살도 그런 영화로서 지금까지의 대한민국 사법부에 관한 비판을 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위험한 것은 영화를 사실로 믿자는 주장이다.
대한민국 사법부가 그렇게 믿지 못할 곳인가? 잘 생각해보면 그렇지도 않다. 바로 얼마전 정연주 전KBS사장과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의 무죄를 선고한 곳도 대한민국의 사법부이다. 이때 소위 '진보진영'에서는 정의가 승리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정봉주 전의원이 구속되었을 때는 정의가 죽었다고 말했다. 같은 사법부의(심지어는 같은 판사의 판결인데도), 얼마의 격차를 두지 않은 판결인데도 정의는 '우리편'에게 유리하냐? 그렇지 않냐를 갖고 정의는 살았다 죽었다 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진영논리가 갖는 무서움이다.
이 진영논리는 최근 여러군데에서 나타난다. 예를 들면 곽노현 교육감에 대한 '진보'진영의 자세이다. 곽 교육감이 준 돈이 대가성이 있던 없던, 그의 캠프 관계자가 몰래 금품을 주기로 협의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 책임은 곽 교육감에게 전혀 없는가? 결국 곽 교육감은 박명기교수에게 돈을 건냈다. 본인은 대가성이 없다고 했지만, 캠프 내의 합의가 있었고, 돈이 오갔다. 누가 봐도 의심을 거둘 수 없다. 곽 교육감이 정말 몰랐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에게 책임은 없는 것일까?
우리는 지금 가카 주변의 엄청난 비리를 접하고 있다. 그리고 그 책임을 가카에게 돌린다. 가카가 그들의 수장이기 때문이다. 곽 교육감을 감싸는 논리대로라면 가카가 측근들의 비리를 몰랐다면, 가카는 책임질 필요가 없다. 곽교육감이 자기 캠프에서 일어난 합이에 책임질 필요가 없듯. 남이하면 불륜이고 자기가 하면 로맨스가 되는 것, 이것이 진영논리가 아니면 무엇인가?
혹자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이렇게라도 해서 세상을 바꿔야 한다.' 난 이렇게 반박하겠다. '괴물과 싸울 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괴물을 닮아가는 것'이라고. 측근 비리도 수장과는 관련이 없다고 감싸고, 사법부의 판결의 '정의'와 '불의'를 마음데로 판단하고, 영화를 사실로 믿으라고 주장해서 이겼다 치자. 우리가 이기고자 하는 괴물과 우리가 다를 것이 무엇인가? 이렇게 권력을 잡아봐야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우리가 곧 그들과 갖게 됐으므로.
내가 '우리'라고 했듯 나도 그 괴물에 반대하는 쪽에 있다. 하지만 괴물을 이기이 위해서 무엇이라도 해야한다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우리는 괴물을 이기는 방법부터 고민해야한다. 아니 그렇지 못하다면, 꼭 이겨야 겠다면, 최소한 내부의 비판에는 관대해야 한다. 당장 이기기에 급급해서 이기는데 당장 장애가 된다고 모든 비판을 적으로 간주한다면 그것은 그냥 괴물이 되는 지름길일 뿐이다.
그렇지 않다고? 지금 분명 소위 '진보'진영에선 그러고 있다. 진중권이 꼼수를 깐다고 진중권을 비난한다. 진중권의 이야기 중에 받아들일 것이 하나도 없는가? 꼼수의 내용을 하나의 견해나 주장 정도로 받아들이자는 의견이 그렇게 잘못된 말인가? 정봉주 전의원 구속에 대한 사법부 판결이 그리 잘못된 판결만은 아니라고 말하면 진중권은 '진보'의 적이 되는가?(그의 문투가 비난 받을지언정)
싸워서 이기자. 제발. 그러나 정당하게 싸워 정당하게 이기자. 세상은 그런 후에나 바뀔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