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디그는 서튼 후(Sutton Hoo)라는 곳의 발굴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발굴로 소위 암흑시대라고 불렸던 앵글로-색슨족이 지배했던 영국의 6~7세기가 실은 대륙과 약탈이 아닌 교역을 하며 나름의 문명을 만들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영화 더 디그는 이 발굴과 얽힌 이야기(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부자집 딸이자 고고학을 전공한 이디스 프레티는 서튼 후 지역의 땅을 사고, 그곳의 발굴을 ‘발굴 기술자’ 바질 브라운에게 맡긴다. 바질 브라운은 제대로 고고학 교육을 받은 적은 없지만 삽을 들 때부터 발굴에 참여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이곳에서 노르만 정복시대 이전인 앵글로-색슨 시대의 유물이 나올 것이라 믿는다.
실제 이곳의 발굴에서는 성과가 나오기 시작한다. 그러자 캠브리지 대학의 고고학자 찰스 필립스(Charles Phillips)는 이곳의 발굴을 접수하고, 바질 브라운은 발굴의 주체가 아니라 ‘참여자’가 된다. 결국 이 유적에서 메로빙거 왕조의 동전이 발굴되면서 이곳이 앵글로-색슨 시대 수장급의 무덤인 것이 밝혀지고, 땅의 주인인 프레티는 그 공을 고고학자 필립스가 아니라 발굴 기술자 브라운에게 돌린다.
영화는 이 과정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영화만 보면 발굴기술자인 브라운에게 감정이입을 할 수밖에 없지만, 고고학을 전문적으로 배우고 이후의 발굴을 주도했던 필립스의 역할이 너무 작게 취급되는 것은 아쉽다. 다만 아예 역할이 사라졌던 브라운을 복원한다는 측면에서 이해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영화는 영상미도 좋고 발굴과정을 보여준다는 점도 좋았지만, 그 사이에서 삶과 죽음에 대한 의미를 찾아간다는 점이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다. 거기에 개인적으로는 아주 잠시나마 발굴했을 때를 회상할 수 있어 좋았다. 비가 올 때 유구를 보호하기 위해 비 맞으며 유구를 덮으러 다녔던 기억, 작은 유물이라도 나왔을 때의 기쁨 같은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영화는 일면 지루해 보일 수도 있지만, 등장인물들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지루할 틈이 없다. 스펙터클한 영화를 원한다면 추천하지 않지만, 그렇지 않다면 한 번 쯤 볼만한 영화임이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