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율령제라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하는 도중 생각이 막힌 적이 있다(자주 있는 일이다). 그러다 문득 현대 민주주의를 율령제와 비교해 보기로 하자고 생각했다. 매우 추상적인 민주주의는 민주정이라는 형태로 실현되는데, 그 민주정이 실현되는 형태는 다양하다. 동시대로(횡적으로) 보면 영국, 미국, 대한민국, 일본, 캐나다, 독일, 프랑스, 스위스 등이 민주주의를 추구하며 민주정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그 형태는 모두 다르다. 입헌군주제의 형태를 띄기도 하고, 양원제를 택하기도 하며, 일부는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종적으로 봐도 민주정의 형태는 다르다. 내가 사는 대한민국만 봐도 1공화국부터 현재의 6공화국에 이르기까지 헌법이 개정되었고, 그 법에 따라 민주정의 내용도 달랐다. 부통령이 있다가 없어지기도 하고, (비록 군사정권 이긴 했지만) 행정부가 무소불위의 권한을 휘두르기도 했다. 지금 우리 사회의 민주정을 이루는 헌법 역시 개헌의 논의가 – 비록 지금은 조금 시들해 지긴 했지만 – 진행 중이다.
이렇게보면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는 이데올로기이며 이 이데올로기를 이루기 위한 정부의 형태로서의 민주정은 각 사회의 상황에 맞게 다양한 형태로 존재할 뿐, 어떤 완성된 형태가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율령제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완성된 형태의 율령제라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율령에 의한 통치라는 하나의 이상을 실행하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 생각을 얼마 전 한 선배와 이야기 했더니, 학계에서는 이미 이렇게들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
『누가 민주주의를 두려워하는가』(김민철, 2023, 창비)를 본 것은 이러한 고민을 하던 때였다.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민주주의는 사실 정체(政體)라고 사용되기에 민주정(民主政)에 가까우며, 내용상으로는 인민이 통치를 한다는 의미에서 민치정(民治政)에 가깝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민주주의의 역사는 민주주의라는 거대한 움직임의 계속 발전해온 승리의 역사가 아니라, 엄청 혐오 받고, 경계 받으며, 배척되던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프랑스 혁명을 거치면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정치체제가 되었는가를 이야기 한다. 특히 프랑스 혁명 이전에 민주정이 배척 받은 이유와 그것이 프랑스 혁명을 거치면서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 가를 세심하게 추적하는 글은 매우 흥미로우면서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엘리트들의 인민 다수의 덕성에 대한 불신,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한 최소한의 경제적인 평등(혹은 자유), 민주주의에 대한 거대한 생각에 변화 속에서도 쉽게 바뀌지 않았던 여성에 대한 인식 등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시사점을 준다. 더욱이 저자는 마지막에 현재 많은 ‘민주정’ 국가들이 과연 ‘민주주의’을 실현하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중요 직책들과 입법권자들은 많은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선거로 뽑지만, 법관, 대부분의 고위관료가 시험에 의해 선발되는 형태가 과연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옳은 정체(政體)인가는 계속해서 많은 국가들이 고민해야 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물론 저자도 말미에 썼듯, 완벽한 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앞서도 언급 했듯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민주정도 하나의 형태가 있을 수는 없다. 그렇기에 민주주의 실현은 완성 불가능한, 그렇기 때문에 계속 노력해야하는 과제이다. 어쩌면 민주주의를 실현하는데 가장 큰 적은 지금의 현실과 제도에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안주하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