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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2.03.21 서평: 대도시의 사랑법

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창비

1.
선물 받은 책을 읽는 다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다. 더욱이 선물을 받을 때 '그 책을 읽고 이야기를 해달라'라고 하면 더 애틋할 수밖에 없다. 나에게 책을 선물했다는 연락을 받은 것은 며칠 전이고, 책이 도착한 것은 내가 장례를 치르고 피곤에 찌들어 밤 늦게 집에 도착한 어제 였다.  책은 마치 층계 윗쪽에서 던져저 놓인 것 같은 모습으로 문 앞에 놓여있었다. 책은 소중하게 주워 갖고 들어와서 표장을 뜯고, 사진을 찍어 잘 받았다고 선물을 보낸 사람에게 인증샷을 보냈다.

2.
책을 읽은 것은 다음 날 아침, 그러니까 오늘 아침이다. 피곤함 보다는 기대감에 이른 아침 눈을 떴다. 부랴부랴 아침을 챙겨 먹고,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주인공이 남자인가? 여자인가? 아. 퀴어구나!' 앞의 몇 문단을 보며 연애소설에 대한 내 소소한 편견이 깨어졌다. 아닌 척하고 살아도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나란 존재에 대해 소설은 나를 질타하듯 흘러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랑을 갈구하는 뻔한 인간의 이야기는 묘한 안도감으로 다가왔다. '사는 게 뭐 다 그렇지'

3.
결국 사람은, 삶은 다 그렇다. 상황이 다를 뿐이다. 소설 속 재희도, 그 형도, 규호도 모두 사랑을 갈망하는 존재였고 그들(아니 그 사이 만난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 속 주인공도 그랬다. '평범하게' 사랑 하고, 사랑 받으며 살고 싶은 욕망, 그 속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존재하기나 할까. 자신의 이상형에 가까웠지만 "사랑, 이라고 생각했던 껀 아니죠?'라고 이야기 하며 사랑을 거부했던 그 형, '먹던 고로게를 던지듯 내 손에 올려놓'고 헤어졌지만 끝내 여전히(혹은 아직까지) 간절하게 바라는 규호와의 이야기는, 특별하지만 평범한 우리네 사랑 이야기다.

4.
글을 읽으며 내내 책을 선물한 사람을 생각했다.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았다는 그 사람의 이야기와 책의 내용이 묘하게 닮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이 책이 담고 있는 평범함이 만들어 내는 보편성 때문일 지 모른다. 사실 몇 가지의 이야기는 상황과 설정을 바꾼다면 내 이야기, 혹은 당신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박상영의 소설을 처음 읽어보지만, 이런 보편성이야 말로 소설이 갖춰야 할 미덕일 수 있다. 특별한데 평범한 것 말이다.

5.
대도시가 주는 가장 큰 이점은 익명성이다. 이웃에 누가 사는 지도 모르는 그 익명성을 몇몇은 개탄하지만, 그것이야 말로 도시가 사람들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수 백만명이 사는 그 도시 안에서 수 백만가지의 사랑이 싹트고 헤어진다. 때로는 쿨하기도 하고, 때로는 지긋지긋 구질구질 하기도 하지만, 아무도 그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익명 속에서 만나고 헤어지고, 사랑하는 것. 그것이 어쩌면 대도시의 사랑법. 그리고 오늘을 사는 우리의 사랑법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글은 '책을 읽고 이야기해달라'라는 것에 대한 답변의 일부이다.

Posted by beatles for s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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