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

A Day in The Life 2020. 6. 8. 10:05

악몽

 

며칠 동안이나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악몽을 꾸었기 때문이다. 그 악몽은 괴물이 나오는 것도, 누구에게 쫓기는 내용도 아니었다. 그냥 내가 내 주변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이었다. 몇 번이나 땀을 흘리며 잠에서 깼다. 아직 선선한 새벽인데도 나는 그 밤마다 에어컨을 켜야 했다. 괴물이 등장하는 꿈이나, 무엇인가에게 쫓기는 꿈은 어릴 때부터 익숙했다. 그것이 남모를 압박의 산물인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공포의 무의식적 표현인지는 알 수 없지만, 또 그런 꿈이 기분 좋을 리 없지만, 그 꿈을 꾸며 소스라치게 놀라거나 식은땀을 흘리지 않는다. 아주 현실 같은 꿈을 제외하면 대부분 그것이 꿈인 줄 알기 때문이다.

 

이번 악몽이 다른 것은 그것이 너무나 현실 같기 때문이었다. 악몽을 꾸기 전에도 언젠가부터 꿈에 주변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꿈의 장소는 가상의 어디가 아니라 내가 생활하는 생활 속 바로 그 공간이었다. 이런 꿈들이 깨고 나서도 대부분 생생했다. 어떤 꿈은 나의 고민이 꿈에서 생생하게 나타나고, 때로는 해결되었다. 물론 해결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번 악몽은 바로 그 연장이었다. 내가 내 부주의와 무관심, 어리석음으로 인해 꿈 속의 생생한 현실에서 내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악몽인 것은 그 꿈이 현실이 아닐 수 있다는 두려움이다.

 

깊은 잠을 자면 꿈을 꾸지 않는다고 하는데, 요새 계속 꿈을 꾸는 것 자체가 깊게 잠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깊게 잠들지 못하는 것은 걱정할 것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럼으로 구원이 망각과 함께 올 수 있다는 것을 최근 느끼는 중이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으로 돌아간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한 때 나는 내가 많은 것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것을 인정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몇 번이나 내 한계를 인정해왔는데, 또 한 부분에서 내 한계를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가진 여러 부분 중 무엇의 한계라도 말이다.

 

악몽을 끝내고 싶은 마음에 시집을 폈다. 악몽에서 벗어나진 못해도 누구나 나 위안이 필요했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는다. ‘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시의 한 구절처럼, 이 악몽은 내 삶이 아직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이상한 위로 말이다.

Posted by beatles for s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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