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 서로를 인지하지 못하고 산다. 지하철을 타도, 버스를 타도 수많은 인파 속에서 내가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 수많은 타인들이 누군가의 부모이며, 자식이며, 친구이며, 동료라는 것을 생각하면 나라는 개인이 얼마나 좁은 관계 속에서만 특별한 인간인지도 알게 된다. 생각해 보라. 그 오늘 아침 출근 길, 같은 칸에 탄 모르는 사람 중 한 명이 저녁에 죽어도 우리는 알지 못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내가 아는 모든 관계는 특별하다. 누군가를 알게 되는 것, 관계 맺는 것은 그 자체로 기적 같은 우연이다. 그 우연이 악연이 될지, 운명과 같은 사랑이 될지, 평생 함께 할 우정이 대상이 될지는 만나는 그 순간 알지 못한다. 어쩌면 인생은 그런 관계를 결정해 나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처음만나 특별한 인상도 없던 사람과 친한 친구가 되기도 하고, 비호감이었던 사람과 결혼하기도 한다. 평생을 함께할 것 같은 친구가 상종 못할 원수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첫인상이 어떻든 간에 누군가를 알게 된 순간 우리는 특별한 인연을 맺은 것이다.
그 특별한 인연이 좋게 발전되어 연인도 되고, 친구가 되기도 한다. 더 특별하다면 부모와 자식과 같이 혈연 가족으로 만나기도 한다. 그리고 그 특별한 관계는 익숙해진다. 생각해보면 내가 남들보다 어머니에게 조금 더 짜증을 자주 내는 것은 어머니와의 관계가 익숙하기 때문이다. 조심하려고 하지만 친한 친구라고 생각하기에 함부로 대하는 경우도 생긴다. 익숙한 연인이기에 소홀해지는 경우도 생기고, 때로는 상대방의 의견을 무시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이 좋았던 특별함은, 악연을 향해간다. 상대방의 특별함을 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좋았던 과정이 그렇듯, 나쁨을 향해가는 과정도 상호적이다.
관계가 특별하기에 그것만 생각하다 가끔 내가 사라져버리는 경우도 있다. 가족의 일원, 직장의 직책, 모임의 총무 등 각종 관계 속에 사는 우리는 그 관계의 단절이 두려워 나의 행복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나는 무엇을 할 때 행복한가?’ ‘나는 누구와 있어야 행복한가?’ ‘나는 어떤 상황을 싫어하는가?’ 등의 질문은 삶에서 가장 중요하며 간단한 질문이지만, 종종 스스로도 저 답을 모르거나, 생각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심지어 관계 때문에 답을 알면서도 행복해 지는 방법을 포기하거나, 기꺼이 불행으로 가기도 한다.
모든 관계는 특별하고, 익숙함은 그 특별함의 최대치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익숙함이 깨어지는 것을 두려워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관계에 나란 존재가 없다면 결국 나에게 특별함도, 익숙함도 모두 의미가 없다. 내 관계 안의 모두가 행복해도 내가 불행하다면, 그것이 내 삶에 어떤 의미란 말인가? 반대로 타인과 관계가 없는 인간이 행복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좋던 싫던 관계 속에 사는 인간이기에, 나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의 특별함을 인정하고, 존중하고, 감사하자. 그리고 그만큼 나도 특별한 존재로 존중받기를 바란다. 그렇지 못한다면? 뭐 거기서 끝인 것이다.
2018년 10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