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1학년 때부터 오랜기간 답사를 다녔지만, 유독 그리웠던 곳이 있다. 바로 성주사지. 생에 처음 구입한 DSLR 카메라에 50mm 단렌즈를 갖고 찍은 성주사지 사진은 오랜동안 내 컴퓨터의 바탕화면이었다.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성주사지에 있는 낭혜화상비는 최근에 발표한 논문에서, 그리고 내가 공부하는 주제에 중요한 단서이기도 하다. 운명을 믿지 않지만, 이쯤되면 운명이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오랜동안 생각한 여행이었다. 동행이 있다 사라지고, 혼자 가려니 1박에서 무박으로 바뀌고, 그 사이에 다시 동행이 생겼다. 나의 강진-해남 여행을 도와준 A였다. A는 오랜만에 서울에 올라왔는데, 저녁에는 약속이 있다고 했다. 새벽에 출발하면 가능한 일정 같았다. 그래서 새벽 일찍 일어나 A를 집 근처에서 태우고 보령으로 향했다. 새벽의 고속도로는 트럭으로 가득했는데, A는 그것이 트럭 기사들이 연비와 시간을 아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생각해보면 당연하지만, 난 그 생각을 못했다.
처음 도착한 곳은 부여 무량사였다. 봄의 나뭇빛이 더할 나위 없었다. 차를 타고 굽이굽은 길을 돌 때마다 나타나는 산의 옅은 초록빛 혹은 연두색의 풍경은 어떤 색보다 아름다웠다. 앞으로 50번도 보지 못할 봄날의 풍경이었다. 아니, 내년 봄은 올해와 다를테니 올해만 볼 수 있는 장관이었다. 무량사에 도착했을 때의 산과 나무의 색도 마찬가지였다. A는 이곳에 처음 와 본다고 했는데, 역시 나무를 좋아해서인지 나무에 감탄했다. 나는 10년 하고도 몇 년이 더 지나서 온 무량사를 열심히 둘러봤다. 정림사탑을 닮았지만, 그렇게만 말하면 아쉬워 할 만한 무량사의 오층탑, 규모가 크지는 않아도 단아한 만큼은 최고라고 생각되는 석등, 화려한 공포를 자랑하는 이층의 극락전은 내 기억보다 훨씬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머무른 시간 대부분 사찰에서 일하는 사람 말고는 나와 A뿐이었는데, 그 번잡하지 않음도 좋았다. 나도 최근에 바라는 것이 생겼는데, 노력만으로는 될 것 같지 않았기에, 둘러보고 나가는 길에 사람들이 쌓아놓은 돌탑에 나도 돌을 얹고 소원을 빌었다.
다 둘러보고 성주사지로 갔다. 최근의 나 답지 않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지난 번 갔을 때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초 봄이었는데, 이번에는 봄기운으로 가득찬 맑은 날이었다. 살짝 지난 날의 분위기를 볼 수 없음에 실망도 했지만, 도착하는 순간 실망은 곧 환희로 바뀌었다. 연두색 산이 배경임도 좋았지만, 성주사지를 듬성듬성 노랗게 물들인 민들레는 이곳에서 봄의 축제를 벌이는 듯했다. 보통의 사지(寺址)는 쓸쓸하기 마련인데, 성주사지는 외로워 보이지 않았다. 큰 절터에 남아 있는 석등 하나, 탑 네 개 그리고 낭혜화상비는 예전의 영화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이곳의 당연한 풍경처럼 느껴졌다. 지난 추억에 빠져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틈만 나면 이것저것 설명하는 나를 보며 A는 '처음에 만나 사랑에 빠진 사람을 다시 만난 사람 같아'라고 이야기했다. 어쩌면 그랬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한 눈에 빠진 사람을 다시 만났는데, 그 사람이 더 아름다워 진 것이다. 그 후에도 한참 사진을 찍고서야 성주사지를 떠날 수 있었다.
점심을 먹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다. 성주사지 주변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일단 점심은 먹어야 했다. 가장 밥집이 많을 것 같은 대천해수욕장으로 갔다. 만조 시간에 가서인지, 대천은 서해임에도 동해 같은 느낌이었다. 연인들과 가족들은 바닷바람이 불어 아직은 쌀쌀할 수 있는 백사장을 드문드문 채워 풍경을 만들었다. 여름에는 젊음과 축제의 장소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 모습이었다. A와 잠시 해변을 산책하고 앉아서 커피를 마셨다. A는 소설가들이 작가와 도시에 대해 쓴 글을 읽었고, 난 틈틈히 사진을 정리했다. 시간이 되어 점심을 먹었다. 내가 수원에 약속이 있다고 하니, A는 그곳에 내려서 화성을 둘러 보겠다고 말했다. 지난 번 A가 진행해준 여행의 고마움을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었다.
하루가 지나 다시 사진을 정리하고 글을 쓰는데, 벌써 성주사지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