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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2.23 우즈베키스탄 – 지리의 중요성-Part4. 다시 타슈켄트

다시 타슈켄트, 그리고 서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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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슈켄트로 돌아왔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친구가 가자는 술집에 갔는데, 예약 없이는 힘들어 보였다. 다시 택시를 타고 친구 집 근처의 Irish Pub으로 갔다. 거기도 자리는 없어보였는데 종업원이 한 쪽에 테이블과 의자를 놔 주었다. 덕분에 그곳에서 축구를 보며(아마도 바르셀로나와 헤타페의 경기), 맥주를 마셨다. 친구 집은 그곳에서 멀지 않아 걸어갔는데, 내가 짐을 놓고 와서 다시 그 거리를 왕복해야 했다. 아침에 여권 때문에 난리 친 것을 생각하면 수미일관한 하루였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샤워를 하고 곧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아이리쉬 펍과 먹은 양갈비. 이땐 사람이 많이 빠져 나간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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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그리고 우즈베키스탄에 대한 느낌과 물류.

친구 가족과 거대한 힐튼호텔이 지어지고 있는 근처 공원에서 밥을 먹으러 갔다. 그 공원은 다른 타슈켄트와는 또 달랐다. 현대식 높은 힐튼호텔의 모습이 그랬고, 서구식으로 관리된 공원이 그랬고, 식당의 분위기도 그러했으며, 완전히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호수의 모습이 그랬다. 문득 이 나라의 30년 후가 궁금해졌다.

내가 만난 이곳 사람들은 모두 친절하고, 정중했으며 성실했다. 이들이 잘 살지 못하는 것은 인간 개개인의 능력 부족이 아니라, 여러 환경이 만든 것이었다. 과거 부하라, 사마르칸트가 물류의 중심지에 있어 번성한 것이라면, 사방 어디도 바다와 맞닿아 있지 않는 이 나라는 물류비용 때문에 투자에서 소외되어 쇠퇴했다. 인건비가 싸고, 사람들이 성실해도 물류비용은 그것을 상쇄할 만큼 많이 소요된다. 이런 점에서 동남아시아와 크게 비교된다. 바다가 없어도 주변 국가들 중에 엄청난 소비시장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딱히 그런 것도 아니다. ‘지리결정론으로만 역사를 보는 것은 위험한 시각이지만, 지리가 인간 역사에 영향을 전혀 주지 않았다는 것도 이상한 생각이다. 과연 이 나라는 어떻게 될까?

친구에 이야기에 따르면 힐튼호텔, 도시 곳곳에서 진행되는 여러 공사들은 현 정부의 개방 정책의 일환으로 자본이 들어왔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한다. 앞으로 이 추세는 계속될 것이다. 이렇게 들어온 자본이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방식으로 돌아간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자본 시장 개방이 양극화를 촉진시키는 것을 너무 많이 보아 왔기에 걱정이 되기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정중하고, 성실하고 친절한 사람들이 더 잘 살기를 바라는 것 밖에는 없다.

우리가 먹은 식당과 먹은 브런치
공원. 보이는 큰 건물이 힐튼 호텔이다.
공원의 모습

마트

마트에 갔다. 마트는 꽤나 현대식이었다. 일층은 마트, 이층은 종합 쇼핑몰 같은 곳으로 음식을 팔기도 했다. 친구 아내가 아이와 함께 공룡을 보는 동안 친구와 나는 마트로 갔다. 치약을 사기 위해서였다. 한국에서는 굉장히 고가에 팔리는 치약이 이곳에서는 매우 저렴하다고 했다. 나는 그곳의 치약을 싹 담아오고 싶었지만, 작은 캐리어를 갖고 왔기 때문에 그렇게는 못하고 소소하게 18개 정도만 담아 왔다. 친구는 소소하게 과일을 몇 개 샀다. 프로 주부의 모습이 살짝 느껴졌다. 친구는 이곳 생활을 마무리 할 때쯤엔 정말 프로 주부가 되어 있을 것이다.

 

러시아 정교회 성당

집으로 돌아와 러시아 정교회 성당을 갔다. 친구 집에서 도보로 20여분 거리에 있었다. 성당은 생각보다 크고 화려했다. 내부는 촬영이 금지되어 있었다. 우리는 약간의 기부금을 내고 초를 갖고 와서 각자 소원을 빌었다. 어제 사마르칸트에서 빈 소원과 같은 것이었다. 내가 초를 제대로 세우지 못해 초가 넘어졌는데, 어떤 분이 다시 단단하게 고정시켜줬다. 누군가의 도움으로라도 소원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부의 분위기는 엄숙했다. 여성들은 스카프를 머리에 두르고 들어와야 하는 것 같았다. 러시아 정교회라서 그런지, 러시아계 사람들이 많이 보이기도 했다. 사실 우즈베키스탄은 무슬림이 많을 뿐이지 이슬람 국가는 아니다. 러시아정교회는 물론 유대교, 개신교 교회도 모두 존재 한다고 했다. 종교의 자유가 있다는 것이 조금 의외라고 느껴졌는데 그러고 보니 그제 갔던 사마르칸트의 맥주집에서는 돼지 소시지도 팔았던 것 같다.

그리고 시내를 조금 걸었다. '이런 도시였구나..' 란 생각이 들었다. 높은 건물은 많지 않지만, 잘 정비되고 깨끗한 도시란 느낌이 들었다. 곧 여길 떠난 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타슈켄트의 러시아 정교회 성당
걸으면서 본 타슈켄트 시내

짐정리와 공항, 그리고 감회

집에 들어와 짐을 정리했다. 갈 때는 단촐 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짐이 많았다. 치약이 컸다. 짐을 정리하고 잠시 잠을 청했다. 잠을 자고 일어나서 여행을 회상하는데, 일주일이 한 달 같았다. 매우 긴 여행을 보낸 것 같은 기분이다. 마리는 늘 걱정되기도 하고..

오랜만에 친구와 함께한 여행이라 좋았다. 난 대학 동기들과 국내 답사를 많이 다녔다. 경주, 부여, 공주, 해남, 대구, 합천, 태백 등등. 그때마다 항상 즐거웠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둘이 같이 간 여행은 없었지만, 어색할 것이라 생각한 적은 한 순간도 없었고 실제로도 그랬다. 그러기엔 둘이 만나 술을 마신 시간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동행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한 일인지 이번에 새삼 느끼기도 했다.

공항에 가서 표를 줬는데 탑승구가 적혀있지 않았다. 나중에 지나가는 항공사 직원에게 물어봐서 5번 게이트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탑승시간이 되어도 5번 게이트로 가는 문은 열리지 않았다. 거의 탑승 마감시간 15분을 남기고 문이 열렸고, 탑승이 시작 됐다. 비행기를 타고 나니 승무원이 대부분 한국인이다. 벌써 한국으로 돌아 간 기분이었다. 안녕 우즈베키스탄! 잘 지내 친구야!

Posted by beatles for s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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