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ross the Universe

2020 여름 휴가기 : 3일차(울진-강릉)

beatles for sale 2020. 7. 14. 16:39

1.

숙소에서 아침을 먹고 나왔다. 비가 지나갔지만, 바람이 남은 바다는 거칠었다. 바다는 하늘을 닮는다. 빛깔도, 모습도, 마음도. 오전의 운전은 C가했다. 덕분에 하늘을 닮은 바다를 마음 것 볼 수 있었다. 무엇이기에 바다는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일까? 저 거대한 물, 높은 파도는 왜 자꾸 그리운 것일까? 생명이 시작되었다는 그곳은, 결국 다시 돌아가야 할 곳이기 때문인 것일까? 아침부터 물음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물음은 근방 머릿속을 지나갔고, 금방 풍경만 남았다.

 

7번국도의 바다
7번 국도의 바다. 하늘색과 바다색은 꼭 닮았다.

 

2.

울진봉평신라비(이하 봉평비)전시관에 갔다. 자원 봉사하는 전시해설사가 우리를 보고 놀란다. 그러면서 “사람이 잘 안 찾는 곳인데..”라고 말했다. 우리는 이곳을 찾은 이유를 구구하게 설명했지만, 내용은 간단했다. 봉평비를 보고 싶어서였다.

법흥왕 11년(524년)에 세워진 비석이니 이미 1,500년 가까이 된 비석이었다. 여기에 법흥왕은 냉수리비의 자기 아버지가 그랬듯, 모즉지 매금왕이라는 어색한 칭호로 등장한다. 매금왕. 광개토왕비와 충주고구려비에도 등장하는 단어 ‘매금’에 왕이 붙은 단어이다. 풀이하면 ‘마립간왕’이다. 그는 동생인 사부지 갈문왕 및 다른 사람들과 이곳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 듣고, 잘못한 사람들을 처벌하였으며, 이것을 비석으로 남겼다. 장100대, 장60대.. 처벌의 내용들이다. 죽임을 당한 사람은 없었다. 노인법(奴人法)이라는 법도 등장한다. ‘매금왕’이라는 독특한 칭호를 쓰던 법흥왕은 이보다 4년 전 율령, 즉 법을 만들어 발표했고, 신하들의 위계인 관등을 정리했다. 이 판결은 그러던 중 일어난 사건에 대한 것이었다.

법흥왕은 이곳을 와보기는 한 것일까? 이곳 사람들은 이 판결을 순순히 받아들였을까? 역시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법흥왕과 그의 신료들은 이 판결로 이 지역의 질서를 바로 잡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곳에 사건의 경위와 판결을 다룬, 그것도 판결에 참여한 모든 사람의 이름까지 넣은 비를 만들어 세웠을 것이다. 그리고 법흥왕은 4년 후인 528년 불교를 공인한다. 이후 그는 성스러운 법흥대왕(聖法興大王)으로 불린다. 기록이 없어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 지역의 반란 소식 같은 것은 찾을 수 없으니, 당시의 판결이 최소한 이 지역을 안정시키는 것에 도움은 되었을 것이다.

이곳에 사건이 일어나고, 그것이 수습되고, 보고 된 후, 사람들이 모여 판결하고, 판결이 집행되고, 비를 만들고 세우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장100대라는 큰 형벌을 당하다 죽는 사람도 혹 있었을지 모르겠다. 이 비는 그런 수많은 상상의 영역을 담고 있다. 한참을 이곳에 머물렀다.

 

1,500년이 넘은 봉평비
봉평비의 판결에 모두가 만족했을까?

 

3.

강릉으로 갔다. K를 기다렸다. C와 K는 나와 같이 모두 동문이지만, 둘은 그리 친한 사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둘 모두 함께 나머지 일정을 같이 하는 것에 찬성했다. 둘 모두에게 고마웠다. 먼저 숙소에 짐을 풀었다. 그리고 K를 만나러갔다. K는 특유의 밝음으로 차 안의 분위기를 바꿨다. 차 안은 금방 소란스러워졌다. 해물탕을 먹으러 갔다. 주문진이었다. 해물탕과 낙지볶음을 배부르게 먹었다. 소화를 시키러 밖으로 나왔는데, 그제야 이곳이 드라마 ‘도깨비’의 촬영지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냥 지나갈까 했지만 경치가 좋았다. 우리도 여느 관광객들처럼 줄을 서서 사진을 찍었다. ‘도깨비’의 촬영지가 아니라도 그곳은 충분히 아름다운 곳이었다. 높은 파도가 가끔 사람을 놀라게도 했지만, 그것마저 풍경이 되어주었다.

 

도깨비 촬영지
주문진 바다

 

4.

강릉 시내로 갔다. 정확히는 시장으로 갔다. 토요일의 시장은 관광객으로 가득했다. 몇몇 인기 있는 음식점은 이미 재료가 다 떨어졌다. 우리는 시장 구경을 했다. 우리 동네에 있는, 주민들이 이용하는 시장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여기저기 줄을 서고, 어느 곳에서는 호객도 했다. 시장의 번잡함은 항상 생기로 느껴져 기분을 즐겁게 한다. 그리고 이 시장에 풍기는 독특한 기름 냄새는 사람을 금방 허기지게 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시장과 거리를 걸었다. 이야기도 했다. 두 사람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희생된 잉어의 이야기가 담긴 월하 거리는 옛날의 전설보다는 오늘의 이야기를 더 만들어야 할 것 같았다. 그만큼 옛이야기보다 지금의 풍경이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그곳에서 기념품을 사고, 먹을 것을 사서 숙소로 들어왔다.

 

사람 가득 강릉시장
월하거리에 있는 다리에서.
기념품 가게

 

 

5.

숙소에서 같이 술을 마셨다. C와 K의 어색함은 쉽게 풀리지 않을 것 같았지만, 술과 이야기와 분위기는 금방 편하게 자리를 만들었다. 우리는 예정된 술보다 더 많은 술을 마시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더 오랜 시간을 보낸 후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숙소 외경
숙소 내부
마실 술 가운데 한 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