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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외국인 노동자 문제, 다문화주의 그리고 인종주의

beatles for sale 2017. 12. 13. 08:36


수원 ‘토막시신 사건’ 용의자로 50대 조선족 남성이 체포되면서 다시 조선족을 비롯한 외국인 노동자들을 ‘수입’해 혼 다문화정책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이 사건 이전에도 오원춘 사건이 있었고, 그 밖에 외국인 노동자들의 범죄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다문화 정책은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젝 등이 이미 지적했듯, 다문화정책은 20세기 초부터 자본에 의해 이루어졌다. 20세기 초 값 싼 노동력을 원했던 자본(가)은 저소득 국가의 인력을 수입하여 싸게 이용했고, 그들을 보다 안정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다문화 정책을 펼쳤다. 특히 서구 제국주의는 여러 식민지에서 다양한 인종과 문화의 노동자들을 수입하였는데, 이들 각자의 문화를 ‘존중’하는 정책을 펼치면서 노동자들 사이의 동질감과 연대를 방해하였다.


한국의 경우도 비슷하다. 값 싼 노동력을 원했던 자본은 국가권력과 결탁하여 저소득 국가의 노동력을 대량으로 수입했다. 그리고 도시와 농촌의 양극화가 지속되면서 정책적으로 국제결혼을 장려하기도 했다. 결과 한국에는 이전에 볼 수 없을 만큼 급격하게 다양한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살게 되었다. 한국의 다문화 정책은 이런 사회적 변화를 감당하기 위해 채택되었다.


경제가 호황인 시점에서 외국인 노동자의 ‘수입’과 그 결과 만들어진 다문화 정책은 큰 문제를 드러내지 않았지만, 불황에 접어들면서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단 노동시장 자체가 낮은 임금으로 고착화 되었다. '노가다'로 대표되는 저임금 노동시장의 임금은 15~6년 전과 현재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더욱이 IMF이후 계속된 비정규직의 확산은 ‘좋은 일자리’를 찾는 젊은 세대에게 삶에 대한 불안감을 가중시켰다.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 수입정책에 대한 그들의 분노와 문제제기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이다. 자본(가)은 값 싼 노동시장을 유지하며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하는데 성공했다.


지겹게 비교되는 서유럽의 경우 건설노동자의 임금 처우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물론 서유럽을 지금의 한국사회와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다만 가정은 해 볼 수 있다. 만약 저임금의 외국인 노동자들의 유입이 적었다면 어땠을까? 서유럽의 사례를 볼 때, 그들만큼은 아니라도 노동시장의 임금은 지금보다 높게 형성됐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의미에서 저소득 국가의 값 싼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을 장려한 정책, 그리고 그로 인한 다문화 정책은 적지 않은 문제를 갖고 있다. 특히 취업에 대한 불안과 좌절을 겪는 젊은 세대가 다른 세대에 비해 다문화 주의 혹은 다문화 정책에 대한 반감이 심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그것이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혐오로 이어지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이번 ‘토막시신 사건’, 오원춘 사건 등이 다문화 정책에 대한 비판을 넘어 조선족 등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혐오로 이어지고 있다. ‘그들의 범죄율이 높다’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그러나 실제 외국인 노동자의 범죄율이 높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그들의 문화적·인종적 특성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


일단 그들의 국적을 보기 전에 그들의 소득수준을 고려해야한다. 보통 저소득층일수록,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일수록 범죄율이 높다. 흔히 미국에서도 흑인 범죄율이 높다고 하는데, 이것을 흑인·백인을 나누지 않고 소득을 포함한 계급별로 분류해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범죄율을 사회·경제적 고려 없이 흑인·백인·히스패닉 등으로 분류하는 것 자체가 인종차별적이다.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대부분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경제적으로 저소득층에 속한다. 거기에 일상적으로 당하는 인종적 차별에 노출되고 있다. 그들의 범죄율이 높다면, 그것은 그들의 문화적·인종적 특성이라기보다 그들이 한국 사회에서 처한 사회·경제적 특성에서 기인했다고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몇몇 강력 사건에도 불구하고 ‘조선족은’, ‘외국인 노동자는’이라고 사건을 생각하는 것은 인종주의만 강화시킬 뿐 사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다 포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우선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들을 지속적으로 유입시키는 정책을 전면 재검토 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자본(가)은 이미 십 수 년 간 이 정책을 통해 엄청난 이익을 취해왔고, 한국의 노동시장을 왜곡시켜왔다. 하지만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정책을 재검토 하자고 하면 중소기업들이 당장 어려움에 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대기업에 착취에 시달리고 있는 중소 제조업 기업은 그나마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들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이들에 대한 대책 없이 무작정 유입되는 외국인 노동자를 막을 수도, 한국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를 쫓아 낼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를 위해선 먼저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착취부터 근절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갑자기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외국인 노동자 범죄가 그들의 낮은 사회·경제적 조건에서 기인한 것이라면, 그들에게 정당한 임금과 대우를 해주어서 한국 사회에서 정당한 대우를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이에 앞서 불법체류자, 외국인 범죄자 등에 대한 추방 등의 적당한 조치가 이루어져야 하며, 한국에 체류하는 합법적 외국인 노동자도 철저하게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이와는 별개로 불법체류자라도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권리’는 보장해 주어야 한다. 그것을 아플 때 치료 받을 권리, 교육받을 권리 등이다. 1948년 선포된 세계인권선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 제25조
모든 사람은 먹을거리, 입을 옷, 주택, 의료, 사회서비스 등을 포함해 가족의 건강과 행복에 적합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가 있다.
- 제26조
모든 사람은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 초등교육과 기초교육은 무상이어야 하며, 특히 초등교육은 의무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부모는 자기 자녀가 어떤 교육을 받을지 ‘우선적으로 선택할 권리’가 있다.


이것을 말하면 ‘이들은 세금도 내지 않고, 한국 사회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않았는데 무슨 소리냐?’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한국국민 중 자영업자 가운데 절반은 면세점 이하로 세금을 납부하지 않는다. 모든 한국 국민이 국방의 의무를 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부가세와 같은 세금은 한국에서 생활하는 불법체류 외국인도 모두 낼 수밖에 없다. 물론 세계인권선언문은 그런 것을 떠나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이야기한다. 이 선언문은 지금으로부터 약 70년 전에 선포되었다.


마지막으로 그럼에도 다문화주의는 계속되어야 한다. 각자 다른 문화의 사람들이 얽혀 살 수밖에 없는 시대에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그 안에서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은 150만 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생활하고, 결혼 등으로 귀화한 여러 계통의 한국인이 존재 하는 한국사회에서, 더 이상 선택의 문제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다문화주의에는 공동의 문화가 제공하는 사회적 연대감이나 결속력을 해칠 수 있는 부정적인 요인도 분명히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 사회가 한 발 나아기 위해서는 다문화주의를 앞서 시도한 다른 국가들의 장점과 실패 사례와 부작용 등을 통해 충분한 시간을 갖고 다양한 시각의 연구를 통해 국민적 논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바로 지금이 그 시점이다.


2014.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