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베키스탄 – 지리의 중요성-Part2. 부하라
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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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월 12일
- 공항에서 숙소까지(택시 기사 이야기)
비행은 금방이었고, 부하라까지는 한 시간 정도만 걸렸다. 그렇게 부하라에 도착했다. 밤이다.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을 빠져 나오니 택시기사들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가장 적극적인 택시기사의 끈질긴 구애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피곤하기도 하고 택시 값이 워낙 싸기도 해서 흥정을 하지는 않았다. 기사는 가는 내내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어디에서 왔는가? 무엇을 하는가? 등등 잘 하지 못하는 영어로 우리의 정보를 최대한 많이 알아내려고 했다. 그리곤 영어를 할 줄 안다는 그의 부인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를 바꿔 줬다(그는 wife를 life에 가깝게 발음하여 잠깐 우리를 당황하게 했다). 그의 부인과 대화의 요지는 내일 택시로 부하라를 안내한다는 것이었는데, 우리는 친구가 이곳을 안내하기로 했다면서 거절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약간 성가시기도 했지만, 그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사는 지도 느껴졌다. 그 모습은 삶이란 무게를 감당하고 사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기도 했다. 그는 우리가 내일 자신의 택시를 이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내리는 순간까지 우리에게 좋은 식당과 술집을 추천해줬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다.
- 숙소와 저녁
호텔은 아시아부하라(Asia Bukhara)였다. 직원들은 친절했고, 시설은 깔끔했다. 짐을 풀자 배가 고팠다. 잠시 쉬었다 식당으로 갔다. 식당을 가는 도중 본 부하라는 확실히 낯선, 혹은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했다. 옅은 붉은 벽돌로 지어진 낮은 건물들이 사방에 펼쳐져 있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시간 여행을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묘한 기분으로 도착한 식당은 호텔 바로 옆에 있는 올드부하라(Old Bukhara)였다. 손님은 많지 않았다. 이런 저런 음식과 맥주를 시켰다. 생맥주가 없어서 병맥주를 시켜 먹었다. 음식은 깔끔하고 맛있었다. 친구와 부하라의 첫인상을 이야기하며 술을 마시고 호텔로 돌아가는데, 친구가 하늘을 보더니 “와 여기는 별이 보이네”라고 말했다. 별이 보였다. 친구는 별을 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오리온자리, 북두칠성이 눈에 들어왔다(내가 아는 별자리는 저게 전부다). 타슈켄트에도 별이 보이지 않을 리 없지만, 부하라에서 보는 별은 특별했다. 몇 천 년 전의 사람들이 별을 보거 먼 길을 향하다 멀리보이는 미나렛(Minaret)을 보고 반가워 했을 모습이 상상이 아니라, 몸으로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그런 짜릿함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것이었고, 그 기분을 갖고 잠이 들었다.
02월 13일
- 부하라 소개
부하라는 오래된 도시다. 기원전 2세기 멸망한 박트리아 왕조의 금화가 발굴되었다고 하니 도시의 역사를 짐작할 수 있다. 당시에는 중국과 인도 쿠샨왕조 사이의 중계무역으로 번성했다고 하는데, 그땐 불교도 번성했다고 한다. 이슬람화가 된 이후에는 학문의 중심지가 되었는데, ‘부하라’라는 산스크리어트어로 ‘사원’이라는 뜻이다. 이름에 걸맞게 도시전체가 사원과 메드레세로 가득하다. 전성기에는 300여개의 모스크와 167개의 메드레세가 있었다고 한다. 9~10세기에는 과학과 문예에 중심지였는데, 이때 이맘부하리는 부하라에서 현재도 무슬림들이 예언자 언행록으로 공부하는 하디스를 저술했다. 칭기스칸에 의해 도시가 완전히 파괴된 이후에도 탁월한 위치 덕에 다시 복구되었으며 부하라 칸국의 수도가 되었다. 지금도 우즈베키스탄 중부의 중심지이다.
- 걸어서 부하라.
이런 부하라를 걸어서 다니기 시작했다. 뭔가 묘한 느낌의 도시였다. 도시 전체가 과거의 도시인 것은 내가 가본 톨레도, 세고비야, 베네치아와 비슷했지만 이곳은 뭔가 더 이국적이었고, 더 정갈했다. 굉장히 잘 생긴(혹은 예쁜) 사람의 꾸미지 않은 얼굴을 보는 것 같았다. 화려하게 꾸미지 않아도 부하라는 매력적이고, 아름다웠다. 걸으며 보는 모든 것이 문화유산이었다. 날씨도 맑았다. 친구와 걸으며 연신 사진을 찍었다. 파란 하늘이 보이는 모든 것을 꾸며주었다.
크게 한 바퀴 돌아 아르크성(Ark of Bokhara)에 도착했다. 거대한 규모의 이 성은 적어도 7세기 이전에 처음 만들어 진 것으로 보이며 이후 파괴와 복원을 반복했다. 현재의 모습은 18세기의 모습이라고 한다. 이후에는 한동안 방치된 듯 보이는데, 아직도 성의 일부는 복원되지 않았다.
성 안에서 기념품을 파는 할아버지를 만났다. 친구와 나는 거기서 몇 가지 기념품을 샀다. 그는 가는 우리를 데리고 어딘가로 안내했다. 나는 처음에 자신의 상점이나 또 다른 상점으로 안내하는 줄 알았는데, 그가 안내한 곳은 박물관이었다. 친절을 오해한 것은 나였다. 마음 깊이 반성했다. 그 할아버지가 안내한 박물관을 포함하여 성의 위쪽 방들은 모두 박물관이었다. 전시 방법이야 약간 촌스러웠을지 몰라도 그들은 테마를 정해 유물을 분류했으며, 최대한 정성을 들여 전시했다. 박물관을 모두 둘러보고 다시 숙소 쪽으로 돌아가며 연신 사진을 찍었다. 아침부터 돌아다녀서인지, 슬슬 배도 고프고 춥기도 했다.
- 카페와 식사
실크로드라는 카페에 갔다. 커피보다는 차를 마시는 곳이었는데, 차와 함께 독특한 먹을거리들이 나왔다. 카페는 이국적이고 깨끗했다. 그곳에서 마신 차도 매우 맛있고 따뜻했다. 그곳에서 몸을 녹이고 다시 사진을 찍으러 다녔다. 모든 건물이 비슷해 보였지만 다 다르게 아름다웠다. 하지만 배고픔이 잊히진 않았고, 우리는 식당을 찾아 다녔다. 그런데 비수기인지 어렵게 찾아간 음식점들은 대부분 문을 열지 않고 있었다. 정말 여러 곳을 해맨 후에, 우리는 어제 밤에 갔던 올드부하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제와는 다른 방으로 안내했고, 분위기도 달라서 마치 다른 집에 온 것 같았다. 음식도 생각보다 맛있었다. 식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가 잠시 둘 모두 휴식을 취했다. 정확히 말하면 잤다.
- 오후, 부하라 서부 관광
자고 일어나 부하라의 서쪽으로 갔다. 가는 길에 커피를 마셨다. 과하게 친절한 여성을 만났는데, 계속 우리를 따라다녀 불안했다. 결국 아르크성에서 친구는 그 사람을 떨어뜨렸다. 그 사이에 마신 커피는 우리의 불안감과 상관없이 맛있었다. 구글 지도를 보며 이스마일 사마니 묘를 찾았다. 묘는 공원 안에 있었다. 이스마일 사마니는 892~907까지 부하라를 통치한 인물이다. 그러니 그의 묘는 1,000년이 훌쩍 넘은 건축물인 샘이다. 아주 큰 건축물은 아니었지만, 건물은 충분히 신비로웠고 아름다웠다. 거기서 고양이를 만났다. 아직 새끼 같았는데 나를 보더니 좋다고 다가와 얼굴을 부볐다. 강아지처럼 계속 따라와 미안하기도 했는데, 내가 멀리 가니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 갔다. 일종의 살기 위한 영업 같기도 했다. 줄 음시기 없어 미안했다.
공원에서 나와 시골길을 가니 Talipach Gate라는(한국어로는 뭐인지 모르겠다) 성벽과 성문이 나왔다. 시골길에서 만난 갓난아이를 안은 여성의 미소가 정겨웠던 기억이 난다. 친구는 그곳에서 사진을 찍으면 마치 사막 같을 것이라며 좋아했다. 그런 친구의 모습이 좋았다. 생각해보면 오래전부터 우리(대학 동기들)가 함께 다닌 여행에서, 부정적인 생각을 했던 기억은 없다.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면을 찾으려 했고, 그래서 항상 즐거웠다. 그것은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거기서 사막 여행자 같은 사진을 찍었다.
바로 옆에 시장이 있었다. 역시 시장은 삶의 모습을 잘 보여줬다. 사람들이 우리를 신기한 듯 쳐다보는 것 말고는 타슈켄트와 다를 바 없었다. 옆에는 차슈마 아유브(Chashma Ayub)라고 불리는 건물이 있다. 욥의 샘물로도 보이는데, 욥(야곱)이 부하라를 방문했을 때, 물이 없어 시달리는 사람들을 위해 지팡이로 땅을 치니 샘이 솟았다는 곳이다. 챠슈마아유브는 이곳에 세워졌다. 지금은 부하라 관계시설의 역사를 보여주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다른 것보다 아랄 해가 마르고 있는 것이 상당한 위기를 느끼는 듯했다.
볼로 하우즈 모스크(Bolo Haouz Mosque)에 갔다. 1712년에 만들어졌다는 이 건물은 아직도 기도 하는 데 이용되기 때문에 안에 들어갈 생각은 하지 못했다. 밖에서 본 건물은 웅장했고, 특히 회랑이 인상적이었다. 회랑에서 인상적인(!?) 사진들을 찍었다. 숙소로 돌아가는데 해가 지고 있었고, 석양에 비친 부하라는 또 다른 색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눈으로 본 것을 사진으로 담을 수 없었다. 붉게 물든 부하라는 밤의 화려함으로 사람을 유혹하는 듯했다.
- 저녁과 야경 그리고 술
저녁을 먹었다. 역시 싸다. 양고기를 시켰는데, 삶은 고기가 나왔다. 1kg에 약 1만원쯤 했다. 고기가 슬슬 질리기 시작했다. 샐러드와 맥주를 먹었다. 실컷 먹고 야경을 보러갔다. 야경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그 자체로 부하라와 어울렸다. 화려했다면 뭔가 이질적이라고 느꼈을 것이다. 야경을 보고 숙소 바로 앞으로 술을 마시러갔다. 보트카를 마셨다. 한 병을 다 못마실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야기를 안주삼아 한 병을 다 마셨다. 깊게 잠이 들었다.
02월 14일
다시 걸어서 부하라
아침을 먹고 체크아웃을 하고 짐을 맡기고 밖으로 나왔다. 부하라의 높은 곳에 올라 높은 곳에서 부하라를 보고 싶었다. 높은 곳을 찾아 여기저기 돌아다녔는데, 높은 곳을 찾을 수는 없었다. 걸으면서 학생들을 만났는데, 중학생쯤 되는 아이들은 우리를 흥미롭게 봤지만 말을 걸 용기는 없었던 것 같았다. 그런데 초등학생들은 달랐다. 우리에게 웃으며 영어로 인사를 했고, 우리도 마찬가지로 반갑게 인사를 했다. 가다가 차가 가지 않아 시동을 걸 수 있게 운전자와 한 사람이 더 차를 밀면서 시동을 걸고 있었다. 우리는 같이 미는 사람을 당연히 동승자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차의 시동이 걸리자 운전자는 경적을 한 번 ‘빵-’울리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갔고, 같이 밀던 사람도 역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자기의 길을 갔다.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부하라를 ‘정의 도시’라고 했는데, 그 정을 보는 듯했다.
- 미술관
높은 곳을 찾아가다보니 미술관도 갔다. 현대 미술관 같았는데, 인상 깊은 그림도 많았다. 더 기억나는 것은 우리 말고는 관람객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갈 때마다 전시실을 열어주고 조명을 켰다. 한편으로는 호화로운 관람이었다. 높은 곳에 가보진 못했지만 미술관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미술관을 보고 초르 미노르로 갔다. 타지크어로 네 개의 미나렛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슬람, 불교, 조로아스터교, 유대교의 공존을 의미하는 건물로 19세기에 건설되었다고 한다. 우즈베키스탄은 무슬림이 많긴 하지만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다. 소련 시절의 역사, 긴 독재의 산물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19세기, 혹은 그 이전부터 내려온 역사의 유산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 점심과 떠남
점심은 초르 미노르 근처 이탈리아 식당에서 먹었다. 모두 잘 차려 입고 점심을 먹으러 왔는데 우리만 여행자 차림으로 식사를 하러왔다. 비싸 보이는 식당이고, 시설도 훌륭했는데 역시 그리 비싸진 않았다. 피자, 파스타, 샐러드, 칵테일, 커피까지 마셨는데 3만원이 나오지 않았던 것 같다. 점심을 먹고 숙소로 돌아와 택시를 타고 기차를 타러 갔다. 기차역까지는 꽤나 멀었는데, 기차를 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검문도 간단했다. 아쉽기는 했지만 의외로 담담했다. 안녕. 부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