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끝나고 써보는 뻘글 2 : 마을공동체?
앞선 뻘글 1과도 연결된다.
서울시에선 한창 마을만들기 사업을 진행 중이다. 비단 서울시 차원이 아니라 각 자치구 차원에서도 진행 중에 있다. 하지만 마을은 늘 존재하고 있었다. 꽤 오래전에도 썼지만, 그런 의미에서 마을만들기 사업은 ‘마을 공동체 만들기’ 사업에 다른 말이다.
역시 지난번에 썼지만, 조선시대 마을 공동체는 직업공동체이기도 했다. 농사라는 일은 한 가족만으로 역부족인 일이었다.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자식을 많이 낳아 대가족을 구성하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모내기, 김매기, 추수 등은 마을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함께 참여해야 끝낼 수 있는 일이었다. 생산 수단인 농토는 사는 곳과 붙어 있었다. 당연히 사람들은 한 곳에 오래 머물며 살았고, 같이 일을 했다. 유대감은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하지만 지금은? 일단 농업 사회가 아니다. 산업사회라는 것을 넘어 정보화 사회에 속한다. 이젠 정보화 사회라는 말도 구시대의 단어 같이 들린다. 이 사회는 생산을 위해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지 않고, 생산수단과 거주지가 제법 떨어져 있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거주지의 이웃과 굳이 협업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마을공동체의 쇠락은 사람들의 마음이 각박해져서가 아니라 사회 구조가 변화하며 일어난 당연한 현상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공동체에 속하고 싶어 한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란 말은 틀리지 않다. 사회 구조의 변화로 마을공동체는 쇠락했지만, 인간은 여전히 다른 공동체에 속해있다. 예전에는 없었던 초·중·고에 다니며 친구를 만들고, 대학에선 같은 전공을 하는 사람들이나 같은 관심사를 갖는 사람들과 어울린다. 꼭 학교가 아니라도 각종 동호회 활동을 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가? 또 각자의 직장에서 일정한 직업 공동체를 유지하고 있기도 하고, 그 중 많은 사람들은 직장의 동료들과 유대를 맺는다. 마을공동체가 아닐 뿐, 우리는 이미 수많은 공동체에 속해있다. 오히려 전통시대보다 더 다양한 공동체에 속해 있으며, 선택할 수도 있다.
마을만들기 사업은 이런 의미에서 아주 제한적이 효과밖에 나올 수 없다. 사회 구조가 바뀌었는데, 바뀌기 전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공동체 만들기 사업의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참여하는 사람은 분명히 존재하고, 그중에는 열정적인 참여자들도 있지만, 전체 ‘마을’의 인구 중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수를 고려하면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는 사례를 찾을 수나 있을까?
공동체는 필요에 의해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물론 민족공동체, 종교공동체와 같이 ‘만들어진’ 공동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이런 공동체가 쉽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미 많은 공동체에 속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공동체에 속하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관심도 두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공동체를 떠나지 않았다.
(2017.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