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ay in The Life

다정한 아침

beatles for sale 2022. 3. 26. 12:28

다정한 아침

1. 봄비
어제 즐겁게 술을 마시고 살짝 들떠 잠이 들었는데, 창에 바짝 붙어 있는 내 침대에서 들리는 수선스러운 빗소리에 잠을 뒤척였다. 짜증이 날만도 했지만 밤의 빗소리는 좋아하는 사람의 옆에 다정하게 누워 떠는 수다 같아, 계속 듣고 있고 싶은 생각이 든다.

2. 반려묘 마리
기분 좋은 빗소리에 약간의 선잠을 깨우는 것은 마리다. 주말을 모르는 마리는, 늘 캔을 따 주는 시간에 맞춰 나를 깨운다. 깨우는 방식이 꽤나 다정한데, 조용히 다가와 얼굴을 부비거나 그것도 안 되면 뽀뽀를 하기도 한다. 평소에는 하는 뽀뽀도 피하지만, 아침 시간만은 더 없이 다정하다.

3. 책과 커피
일어나 어제 먹은 술자리를 정리하고 밥을 먹는다. 그리고 커피를 내려서 어제 선물 받은 책을 읽었다. 그 사람은 내가 록 음악을 좋아한다고 하니 록 음악의 역사를 담을 책을 선물 해줬다. 정보량이 많은 이 책은 지난 번 받은 "대도시의 사랑법"같이 단숨에 읽을 책이 아니다. 빨리 읽고 소감을 이야기 하고 싶었지만, 오래도록 읽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드니 기분이 나아진다. 취향에 맞춰 선물 받은 책에서 다정함을 느낀다.

4. 빨래와 햇살
이번 주는 바빠서 빨래가 밀렸다. 빨래바구니에 담아둔 빨래를 구분하여 담고 빨래를 한다. 세탁기에 넣을 것은 세탁기에 넣고, 손 빨래할 것은 따로 챙긴다. 그렇게 빨래를 하고 세탁기가 다 돌아가길 기다려 건조기에 빨래한 것을 넣는다. 건조기가 윙- 소리를 내며 돌아가니 아침 일찍 일어난 피로가 살짝 묻어 나온다. 이제는 비가 그치고 햇살이 드는 창가 옆 침대로 가서 눕는다. 햇살이 다정하게 내리 쬔다.

5. 다시 마리
오랜만에 내가 집에 붙어 있는 것이 좋은지 마리는 평소보다 더 많이 나를 졸졸 따라 다녔다. 그리고 내가 침대에 눕자 내 왼쪽 머리 맡을 찾아 자기도 눕는다. 난 다정하게 마리의 이름을 부르며 누워 있는 마리를 만진다. 마리는 내 손길과 목소리에 기분이 좋은지 그르렁 거리며 잔다. '아. 이 아침을 기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급히 일어나 아이패드를 켜고 글을 쓴다.

덧.
다 써가는데, 얼마 전 상을 치른 사촌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형, 고마워. 나중에 내가 술 사러 갈게" "내가 뭘 한 게 있다고" "아니야. 형. 정말 고마워" 이 대화 속에도 다정함이 있다. 봄비, 고양이 마리, 책과 커피, 빨래와 햇살, 사촌 동생의 전화 이래저래 다정한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