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알게 된지 23년 되는 친구가 있다. 내가 철들고 나서 가장 처음 개인적인 여행을 한 것도 이 친구와 함께였다. 스무 살, 여행이라곤 해본 적도 없던 우리는 동서울터미널에서 무작정 이른 아침 부석사가 있다는 영주행 버스에 올랐다. 알고 보니 시외버스라 이곳저곳 들러야 했고, 우리는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영주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해서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는데, 부석사는 버스를 타고 40분을 더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우리 여행은 영주-안동-부산-거제-부산-서울로 이어졌다. 내년 여름이 되면 딱 여행 한지 20년이 된다.(이 여행 이야기도 언젠간 꼭 써보리라!)


참 신기한 인연이다. 우리는 중학교 3학년 때 이후 고등학교, 대학교 모두 다른 곳에 다녔다. 나는 문과, 그 친구는 이과였다. 지금도 왜 계속 인연이 이어졌는지 서로 신기하게 생각한다. 이런 인연이라 난 그 친구 결혼식 사회를 보게 되었는데, 친구 가족들 말고는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 당황스러웠던 기억도 있다.


모범생인 친구였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학원도 단과반만 다니며 공부를 했고, 고등학교는 전교 1등으로 들어갔다. 명문대 공대에 진학했는데, 과외로 생활비와 학비를 벌만큼 착실하기도 했다. 대학원을 마치고 굴지의 대기업에 취직했고, 대학원 다닐 때 소개팅에서 만난 사람과 3년 연애 후(이건 정확하지 않다) 결혼 했다. 아이는 허니문 베이비. 뭔가 매우 전형적이다. 이후 친구는 대기업보다 조금 더 안정적인 직장으로 옮겼고 이번에 박사과정에 진학했다. 요사이에는 두 달에 한 번은 만나는 것 같다.


긴 연휴에 하루 시간을 내어 둘이 만났다. 친구의 학교가 신촌에 있어 홍대에서 만나기로 했다. 보통은 중간에서 보거나, 그 친구가 대학로로 왔는데 이번엔 미안해서 내가 갔다. 정말 오랜만에 가본 홍대는 스무 살, 우리가 다니던 그곳과는 너무 달랐다. 우연히 들어간 술집의 분위기도 묘했다. 외국인들이 엄청 많았고, 외국인 종업원도 있었다. 거기에서 맥주 한 잔을 마시는데, 외국에 나온 듯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둘이 해외로 나가 본 적은 없다. 둘이 이야기를 나누다 여행 20주년으로 한 번 해외로 나가보자고 했다. 벌써 아들이 둘인 친구는 쉽지 않겠지만 도전해 본다고 했다. 외국 출장이 잦으니 핑계 꺼리를 만들어 본다는 것이다.


문득 20년마다 여행을 가면, 이번에 40살, 다음엔 60살, 그 다음엔 80살이니 둘 모두 살아 있어도 가능할지 모르겠고, 그 다음 여행을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 그 이야기를 했다. 혹시 가게 되면 두 번 남았다고. 그리고 보니 ‘젊음의 거리’ 홍대여서 그런지 술집에는 30대 후반인 우리보다 더 나이를 먹은 사람들을 찾기 힘들었다. 나이 이야기로 가니 그 시끄러운 술집에서 갑자기 약간 진지해졌다. “60살도 금방 올 것이고, 언젠가 둘 중 한 명은 나머지 한 명의 장례식에 가야할 것인데, 그 때 기분이 좀 이상할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둘이 같이 죽으면 그것은 사고사 일터이니 안 될 것’이란 이야기가 이어졌다.


결국 결론은 조금 더 만나고, 조금 더 즐겁게 살자는 이야기였다. 스무 살 때 정말 술만 마시고 놀았으니 이제 조금 더 많은 것을 해보자고 했다. 두 아이의 아빠지만, 자기 인생도 좀 챙겨야겠다는 - ‘모범생’ 친구로서는 – 다소 과감한 발언도 나왔다. 물론 그날의 기분 탓에 즉흥적으로 나온 말일 수도 있지만, 즉흥적이지 않은 그 친구의 성격을 감안하면 대단히 놀라운 발언이었다.


기분에 취했을까? 요새 거의 마시지 않는 술을 결국 그날은 꽤나 마셨다. 연휴기간 박사과정과 일을 같이 하며 밀렸던 과제를 하러 나왔다던 친구는 결국 나와 1시까지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집에 장인·장모님이 모두 와 계신다고 했는데.. 그 친구와 홍대에서 만난 것은 거의 15년도 더 지난 일이었다. 15년 만의 홍대 술자리, 20년 만의 여행 계획은 그렇게 무르 익었다.
(2017.10.13)


Posted by beatles for s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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